이 나라가 발전적 방향으로 전진하기 위해선 18대 대선에서 드러난 후진적 제도와 관행, 의식은 털고 가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최대 관심사는 야권후보 단일화였다. 단일화는 웬만한 선거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여야 후보들의 비전과 정책 경쟁은 실종되다시피 했다. 9월 1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전 후보가 후보 등록 이틀 전에 사퇴할 때까지 야권 대선후보에 대한 국민 검증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선거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최소한 후보 등록 3, 4개월 전에 후보 단일화를 매듭짓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후진적 대선 관행의 상당 부분은 명색이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이 단일화에 매달린 데서 비롯됐다. 각자 대선후보를 내는 것이 공당(公黨)의 존재 목적이고, 정당정치의 원칙에 부합한다.
이번 대선에서도 상대 후보를 겨냥한 흑색선전이 난무했다. 흑색선전은 근거가 있는 검증과 달리 ‘카더라 통신’이 대부분이었다.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뜨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비방은 대부분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나꼼수’는 흑색선전의 생산 공장이었다. 대선이 끝났지만 흑색선전의 생산과 유통 과정을 끝까지 추적해 뿌리를 뽑아내야 한다.
3차례 진행된 대선후보 TV토론은 후보들을 비교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다. 그러나 지지율이 1%도 안 되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1, 2차 토론에서 “나는 박근혜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며 독설 쇼로 토론의 품격(品格)을 떨어뜨렸다. 지지율이 40% 이상인 박근혜, 문재인 후보가 이 후보와 똑같은 질문 답변 시간을 배정받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공평하지 않다. ‘의석 5석 이상’ 정당 후보라는 요건을 바꾸고 지지율 기준도 강화해야 한다. 미국에선 TV토론 참석 기준이 지지율 15% 이상으로 명시돼 있다.
이 전 후보는 선거일 사흘 전에 사퇴했으나 국민 세금인 선거보조금 27억 원을 반환하지 않았다. 세를 키우기 위한 후보 단일화는 정파적 이해관계일 뿐 후보직 사퇴의 명분이 될 수 없다. 이 전 후보의 ‘먹튀’는 진보좌파 진영의 이율배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소한 후보 등록 후 사퇴할 때는 선거보조금 반환을 의무화해야 한다.
이번 대선을 일관한 화두는 ‘새 정치’였다. 새 정치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이번 대선에서 드러난 구태(舊態)를 청산하는 작업이 새 정치를 구현하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