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승건]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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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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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건 스포츠레저부 기자
이승건 스포츠레저부 기자
퀴즈 하나. 역대 올림픽에서 한국에 가장 많은 메달을 안겨준 종목은 뭘까. 양궁을 떠올렸다면 절반은 맞힌 셈이다. 금메달만 따지면 19개로 가장 많다. 색깔을 불문하고 메달을 가장 많이 딴 종목은 유도다. 1964년 도쿄 올림픽 김의태의 동메달을 시작으로 올해 런던 올림픽까지 꼭 40개를 얻었다. 금 11개, 은 14개, 동메달이 15개다. 은메달과 동메달은 모든 종목 중 가장 많다. 한국이 런던 올림픽을 종합 5위(금 13, 은 8, 동메달 7개)로 마친 데는 금메달 2개를 보탠 유도의 힘이 컸다.

런던 올림픽이 끝나고 귀국한 남자 81kg급 금메달리스트 김재범과 90kg급 금메달리스트 송대남에게는 인터뷰와 방송 섭외 요청이 쏟아졌다. “4년 전에는 죽기 살기로 해서 졌다. 이번에는 죽기로 해 이겼다”는 김재범의 말에 많은 국민이 감동을 느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73kg급으로 시작했던 체급을 81kg급, 90kg급으로 올리며 유도 선수로는 환갑인 33세에 금메달을 딴 송대남의 스토리도 마찬가지였다. 송대남과 그의 손윗동서인 남자 대표팀 정훈 감독의 ‘맞절 세리머니’ 역시 큰 화제가 됐다. 정훈 감독과 송대남은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3, 4개월 전의 일이다.

2012 KRA 코리아월드컵 국제유도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이달 6, 7일 제주 한라체육관을 찾았다. 김재범은 비록 부상으로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이틀 내내 경기장을 찾아 동료들을 응원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송대남은 남자 대표팀 코치가 돼 후배들을 지도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의 첫 금메달 소식을 전해준 최민호와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원희도 각각 남자 대표팀과 여자 대표팀 코치로 매트 옆에 서 있었다. 런던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대표팀 사령탑에서 물러난 정훈 용인대 교수는 해설위원 자격으로 중계석을 지켰다.

내로라하는 유도 스타들이 총출동했지만 그들을 알아보거나 응원하는 사람들은 관계자뿐이었다. 관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장소가 제주도라 그랬을까. 아마 서울에서 대회를 열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유도는 비인기 종목이니까.

프로야구를 즐기듯 유도 경기장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선수들은 ‘평소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재미를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북적대는데도 썰렁하기만 했던 체육관을 떠올리면 불과 몇 달 사이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정훈 교수가 “유도는 비인기 종목이라 은퇴식이 없어 송대남의 은퇴 행사를 방송 제작진에게 부탁했다”고 말한 것이 그저 농담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홀대받는 효자 종목’ 선수들은 그런 사실을 잘 안다. 자신들이 관심을 받는 것은 올림픽 전후로 얼마간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더 악착같이 메달을 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올림픽 때만 되면 ‘메달에 집착하지 말자’ ‘승부를 즐기자’ ‘엘리트 체육보다 사회 체육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져 나온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말이 맞다고 해서 당장 그렇게 될 수는 없다.

2004년 이원희가, 2008년 최민호가, 2012년 김재범과 송대남이 상대를 시원하게 메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얼마나 많은 국민이 기뻐했던가. 그랬다면 평소 아주 작은 관심쯤은 가져주는 게 그 기쁨을 선물한 이들에 대한 예의 아닐까. 시인 나태주는 ‘풀꽃’에서 ‘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고 했다. 유도를 비롯한 이 땅의 모든 비인기 종목 선수들도 그렇다.

이승건 스포츠레저부 기자 why@donga.com
#운동선수#올림픽#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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