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상원]판결문 바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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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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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상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법원이 말도 안 되는 판결을 했네.” “뭔데 그래요?” “글쎄, 다른 지역의 소(牛)를 횡성에 데려와 한두 달만 키우면 ‘횡성한우’로 판매해도 문제가 없다네요. 이래도 되는 거예요?”

최근 대법원은 다른 지역에서 태어나 사육되던 소를 횡성으로 옮겨 일정 기간 사육해 도축한 다음 ‘횡성한우’라고 원산지를 표시한 피고인들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항소심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이 판결이 보도된 기사 제목은 대개 ‘대법, 횡성에서 한두 달만 키워도 횡성한우 인정’, ‘다른 지역 소 데려와 길렀어도 횡성한우’ 등으로 돼 있었다. 보도 내용만 접하거나 기사 제목만 보면, 대법원이 국민의 지대한 관심사인 먹을거리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누리꾼들은 인터넷 댓글 등을 통해 법원이 가짜 횡성한우 판매업자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난을 쏟아 냈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 걸까? 이번 ‘횡성한우’ 대법원 판결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본 필자의 답은 ‘아니다’였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쇠고기에 대해 출생, 사육, 도축과 무관한 지역을 원산지로 표시하거나 출생, 사육 지역과는 무관하게 ‘도축만을 위해’ 이동된 지역을 원산지로 표시한 행위”는 원산지표시 위반 행위에 해당하므로 처벌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다만 ‘횡성한우’ 사건 당시에는 출생지나 사육지에서 이동된 축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지역에서 횡성으로 이동시킨 뒤 횡성에서 일정 기간 사료를 먹이다 도축한 소를 횡성에서 사육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는,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살펴 판단해야 한다. 법령에 명시적 규정이 없는데도 임의로 일정 기간을 설정해(항소심은 2개월로 기준을 설정했다) 그 기간에 미달하면 유죄, 그 기간을 경과하면 무죄라는 일도양단(一刀兩斷)식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농산물품질관리법은 살아 있는 가축이 이동될 수 있다는 어쩌면 당연한 현상을 반영해 이동된 축산물의 경우 이동 후 사육된 지역을 원산지로 표시할 수 있는 근거를 수년 전 마련했다. 문제는 그 구체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던 때 피고인들이 다른 곳에서 출생한 소를 횡성지역으로 옮겨 도축해 판매한 것이다. 농림수산부가 국내에서 이동된 소에 대해 “도축일을 기준으로 12개월 이상 사육되어야 한다”라는 원산지 판정 기준을 마련한 것은 피고인들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2심 재판을 받고 있던 지난해 5월이다.

법망의 허술함을 이용해 먹을거리를 갖고 돈을 벌려는 악덕 쇠고기 판매업자를 엄단하고자 한 항소심의 취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고인들에 대한 형사처벌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법부가 임의로 기준을 세워 유죄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대법원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형벌 법규는 엄격하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며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확장 해석하거나 유추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대원칙 때문이다. 피고인의 행위가 아무리 도덕적, 사회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더라도 말이다. 사법부가 이런 원칙을 지켜 내지 않으면 국가 권력에 의한 형벌권의 자의적 행사를 막을 수 없다. 그것이 법치주의의 척도다.

‘횡성한우’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 내용은 일부 언론보도에서 나타난 자극적 기사 제목이나 내용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대법원 홈페이지에는 ‘횡성한우’ 판결문이 게시돼 있다. 특별히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문이 아니니 한번쯤 읽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언론보도만으로는 느끼기 어려운 판결의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상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판결문#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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