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예상규]내가 겪은 교토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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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규 서울대 의대 교수·약리학교실
예상규 서울대 의대 교수·약리학교실
체세포로부터 역분화 유도만능줄기세포(iPS)를 만든 공로로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야마나카 신야 일본 교토대 교수는 자신의 인생을 “실패만 겹쳐 20여 년 동안 계속 울고만 싶었던 좌절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고베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다른 사람이 20∼30분에 끝내는 수술을 나는 2시간이나 걸렸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노벨상 7명… 자유롭게 연구하라


그는 의사에서 연구자로 방향을 바꿔 1999년부터 나라센탄(奈良先端)과학기술대학원대에서 배아줄기세포(ES) 분화에 필수적인 전사인자(단백질 발현조절인자) 연구를 시작했다. 본격적인 iPS 연구는 2004년 교토대 재생의학연구소 교수로 옮긴 후부터였다. 야마나카 교수는 교토대 출신은 아니지만 그가 재직하고 있는 교토대는 일본의 첫 노벨상을 포함해 과학 분야에서만 7명을 배출한 최다 노벨상 수상자 배출 대학이다.

필자는 1997년부터 교토대에서 분자면역학을 공부해 2001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에는 박사후연구원도 했다. 내가 교토대에서 느낀 첫 번째 강렬함은 ‘자유’였다. 관료 양성을 위주로 하는 도쿄대와 다른 학풍을 만들고 싶어 했던 교토대는 학생들의 창의성 함양을 제일의 가치로 여겼다.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주제를 자유롭게 연구하도록 하는 게 이곳 학풍이었다.

나는 교토대 시절 기숙사에서 살았는데 1931년 준공된 기숙사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기숙사였다. 학생 기숙사이지만 외부인들에게도 개방했다. 학교 주변 가장 싼 숙박시설이어서 무척 허름했지만 학생들은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다. 아무데나 앉아 만화책을 탐독하거나 밤늦게까지 춤을 추거나 악기를 연주해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기숙사 운영은 학생자치회가 맡았으며 통행시간 제한도 없었다.

이런 기숙사의 자유로움은 학사 행정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교토대에서는 학과를 구분하기는 하되 전공과 관계없이 학생들이 타 전공 강의를 자유롭게 들을 수 있다. 강의시간에 출석을 부르는 교수도 없다.

하지만 이렇게 ‘자유롭다’고 해서 그냥 방임하는 게 아니다. 교토대는 기초과학 연구 환경이 남다르다. 필자가 있었던 의대만 하더라도 기초연구를 하는 7개 연구동 중 1개동은 4층 규모의 동물실험동이었다. 또 교수 1인당 사용하는 공간이 우리의 3∼5배 정도로 크고 최신 연구 장비와 설비가 훌륭하게 갖춰져 있다.

교토대에는 대학 대학원을 제외하고 총 14개의 연구소가 있는데 일본 대학 중 가장 큰 규모이며 연구소 하나 규모가 우리 단과대학 수준이다. 필자가 박사후과정을 한 바이러스연구소는 현재 전임교수가 42명으로 준교수(우리의 조교수)까지 합하면 100여 명이나 된다.

연구소 1곳이 우리 단과대 규모

교수에게는 1인당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비서가 따로 있고 준교수 또는 강사 1명, 연구조교 1명을 학교로부터 지원받는다. 이런 환경은 교수들이 불필요한 행정 부담에서 해방되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만든다.

학생들이 생활고에서 벗어나 연구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교토대의 장점이다. 교토대는 박사과정 대학원생에게 장학금은 물론이고 생활비까지 지원해준다. 학교 장학금을 받지 않는 학생들은 일본학술진흥재단(JSPS)으로부터 월 600만 원 정도를 지원받거나 각종 교외 장학금을 받아 오로지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

박사후연구원의 절반 이상이 교토대 출신이 아니라는 것도 교토대의 개방성을 잘 보여준다. 이런 개방적 분위기 속에서 교수들은 자신의 연구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거의 모든 교수가 실험을 시작했을 경우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신중하고 철저하게 분석한 후 실험을 시작한다. 연구 분야도 그때그때 유행에 따르지 않고 꾸준하고 일관되게 지켜 나간다. 필자의 지인으로 현재 바이러스연구소에서 연구하는 면역학 전공 교수는 지난 5년 동안 공동연구를 제외하고 논문 실적이 전혀 없음에도 자신의 분야를 고집하며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예상규 서울대 의대 교수·약리학교실
#교토대#서울대#연구#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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