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지문]무라카미 하루키 선생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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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
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
아사히신문에 기고하신 ‘영혼의 통로를 막지 마라’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선동에 휘둘리는 자국민들에게 긴 안목과 침착한 사려를 촉구하신 선생과 독도와 센카쿠(尖閣) 열도에 관한 역사적, 인간적 진실에 일본 국민의 눈과 마음을 열어주신 오에 겐자부로 선생 등 지식인들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힘으로 비교우위를 만회하려는 日

선생이 말씀하신 대로 2차대전 종전 후 한중일 3국은 고차원적인 ‘동아시아 문화권’을 이루었습니다. 이 성취는 일본이 먼저, 이어 한국과 중국이 경제성장을 이루어 바야흐로 문화의 ‘등가 교환’이 가능해지면서 형성되었다고 봅니다. 달리 말하면 선두주자인 일본이 지난 수십 년간 누렸던 비교우위를 잃으면서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고요. 따라서 지금 일본이 보여주고 있는 공격적 태도의 바탕에는 이 비교우위 감퇴를 힘으로 또 위세로 만회하려는 심정이 깔려 있다고 사료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으로 되기 쉬운 것 같습니다.

선생께서도 아시겠지만 독도는 일본이 1905년 을사늑약으로 우리의 주권을 마비시킨 후 합법의 형식을 빌려 불법으로 편입해 버린 우리 영토입니다. 을사늑약이 명백한 불법이고 무효인데 독도 편입은 합법이고 유효하다는 것이 인류사의 정의일 수 있을까요? 일본이 독도 편입의 합법성을 주장하는 것은 일본인이 사랑하는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의 하이쿠, “벼룩을 눌러 죽이며 입으로는 말하네, ‘나무아미타불’” 바로 그 상황입니다.

고대 한반도 3국과 일본은 더할 수 없이 다정한 이웃이었던 것 같습니다. 백제의 왕족, 고구려 고승들이 풍랑을 헤치고 일본까지 달려가 학문을 전하고 불도(佛道)를 펼치고 뼈를 묻었습니다. 백제가 멸망한 후 백제 유민들은 일본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일본에 가서 백제인 촌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엔 일본을 이웃으로 가진 것이 한국에 무서운 재앙이었습니다.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는 용서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두려운 마음으로 경계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요?

한국인들은 예의 바르고 성실한 일본인을 보고 일본에 대한 인식을 바꿔 가다가도 일본의 침략근성 부활의 징후가 감지될 때마다 화들짝 놀라며 임진왜란, 간토대지진 후 조선인 학살, 일제강점기의 수탈과 잔혹성, 강제징용, 일본군위안부… 그 모든 피해와 굴욕을 상기하고 분노합니다. 일본이 이웃 나라들을 그토록 괴롭히고 유린해서 얻은 것이 결국 무엇이었을까요?

몇 해 전 규슈의 남단, 가미카제특공대 기지였던 지란(知覽)에서 저는 형언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을 느꼈습니다. 거기서 구입한 특공대원들의 마지막 서한집에는 무카이시마 고이치(向島幸一)라는 청년이 부모에게 쓴 ‘황국의 성업(聖業)을 위해 기꺼이 몸을 바친다’는 서한이 있었습니다. 서한에는 자기가 죽은 후 정부에서 주는 보상금은 ‘염원했던 집의 개축에 일부나마 보태시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이 효성스러운 청년은 영웅일까요, 살인마일까요, 희생양일까요? 그의 부모가 ‘조국’의 끊임없는 영토야욕의 제물이 된 착한 아들의 죽음을 애도할 때 그의 자살폭격으로 희생된 수백 명, 수천 명의 이국 젊은이의 부모들도 피를 토했습니다. 이 착한 청년이 어떻게 인류사의 죄인이 되었는지 일본의 젊은 세대가 똑바로 알지 못한다면 가미카제특공대의 비극은 반복될 수 있습니다.

고립을 부르는 영토에 대한 욕심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그 전성기 때 영토를 자기네 영토라 고집한다면 우리가 사는 지구의 바다를 모두 매립해서 육지를 만들어도 모자랄 것입니다. 다른 나라의 역사성과 민족감정을 침해하는 영토에 대한 욕심은 결국 살상과 원한을 낳고 민족적 고립과 배척을 초래합니다. 선생께서 말씀한 대로 국경은 영혼이 오가는 통로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이나 국가나 모두 지구의 일시적인 세입자가 아닙니까? 온순한 일본 국민이 정치가들이 뿌리는 값싼 술에 취해 공격적 구호를 복창하다가 뒤따라 올 가미카제에의 호출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태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빕니다.

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
#무라카미 하루키#센카쿠 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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