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안영식]상무의 ‘대인배 스타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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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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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연인이 갈라서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큰 잘못을 했거나 변심했을 때다. 또 하나는 애초 이별할 운명인 ‘잘못된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초 국군체육부대(상무) 배구단이 프로배구에서 퇴출된 것은 전자(前者)에 해당된다.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된 선수 대부분이 상무 시절 나쁜 짓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무 축구단이 최근 ‘2부 리그 강제 강등’에 반발해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이별 통보’를 한 것은 후자가 원인이다.

상무 축구단은 광주광역시를 연고지로 2003년 K리그(한국프로축구 최상위 리그)에 입성했다. 하지만 광주시가 2010년 광주 FC를 창단하자 졸지에 집 없는 신세가 됐다. 상무는 서둘러 경북 상주시에 새집을 마련하고 2011년 ‘상주 상무’로 변신해 K리그에 남았다.

그런데 새롭게 출발한 지 2년 만에 날벼락을 맞았다. 내년부터 K리그를 1, 2부로 나눠 운영하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상무는 프로팀 요건(독립법인화, 프로선수 계약)을 갖추지 못했다’는 아시아축구연맹(AFC)의 지적에 따라 상무를 2부 리그로 강등시킨 것이다. 상무는 즉각 ‘남은 K리그 14경기에 상무 선수들을 출전시키지 않겠다’며 K리그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상무와 K리그의 이별은 ‘필연’이다. 프로선수라도 상무에 입대하는 순간 아마추어로 신분이 바뀐다. 상무가 AFC 측이 제시한 프로팀 요건을 갖추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문제는 헤어짐의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AFC의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즌 중 강제 강등’은 명예를 중시하는 군(軍)팀 상무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 이에 상무는 남은 시즌 보이콧은 물론이고 기초 군사훈련을 받지 않은 선수 24명에게 ‘28일 논산훈련소 입소’ 명령을 내리는 강수로 응수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유치한 우리나라가 1984년 국군체육부대를 창설한 이유는 국가대표급 엘리트 선수의 경기력 유지에 병역 문제가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상무는 그동안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상무가 올림픽과 아시아경기에서 딴 메달은 각각 전체의 약 10%와 17%에 이른다. 113개국이 출전한 지난해 세계군인체육대회(브라질)에서는 종합 6위(금 8, 은 6, 동메달 8개)에 올랐다.

한국 축구가 아시아경기와 올림픽은 물론이고 AFC챔피언스리그와 월드컵 등 국제대회에 출전하려면 AFC와 국제축구연맹(FIFA)의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최선이 불가능하면 차선이 ‘또 다른 최선’이다. 다행히 AFC는 상무가 2부 리그에서 뛰는 것은 허용했다. 상무는 2부 리그에서라도 선수들의 경기력을 유지시켜 줘야 한다. 그것이 상무의 존재 이유다.

상무가 ‘프로리그 탈퇴, 아마리그 전환’ 방침을 고수한다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으로 피해자는 선수들이다. 게다가 이번 사태의 여파인 듯 이근호(울산 현대) 김진규 정조국(이상 FC 서울) 오범석(수원 삼성) 등 K리그 스타들이 줄줄이 내년부터 2부 리그에서 뛰게 될 경찰청팀에 최근 입단지원서를 냈다. 상무 축구단의 모토는 수사불패(雖死不敗·비록 죽을 순 있어도 질 수는 없다). 하지만 톱클래스 선수가 상무 입대를 꺼리는 현상이 계속된다면 상무는 아마추어리그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일개 사단법인이고 상무는 막강한 국가기관이다. 상무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자 징병제 국가인 한국의 엘리트 스포츠 버팀목이다. 상무가 ‘대인배’로서 대화와 협상을 주도해 상생(相生)의 방도를 찾길 기대한다.

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ysahn@donga.com
#상무#프로배구#축구단#K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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