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황진영]사기 공모제와 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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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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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영 경제부 기자
황진영 경제부 기자
손해보험회사들이 출자해 만든 한국화재보험협회는 지난달 어렵게 새 이사장을 맞았다. 올해 2월 고영선 전 이사장이 교보생명 고문으로 갑자기 옮기면서 이사장 자리는 6개월 이상 비어 있었다. 이사장 선임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정부의 눈높이에 맞는 후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화보협회는 마땅한 인물을 찾지 못하자 협회 창립 이후 처음으로 이사장 공모제를 실시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1차 공모 때는 지원자 6명을 모두 탈락시켜 뒷말이 무성했고, 2차 공모 때는 정부의 개입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의 경우도 공모제 운영의 문제점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올해 7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퇴임 뒤 해외여행 계획까지 기자들에게 알렸으나 후임으로 거론되던 인사들이 최종 낙점을 받지 못하면서 임기가 1년 늘어났다. 신보 이사장 최초로 3년 임기가 끝난 뒤 임기가 1년 연장됐던 안 이사장은 다시 연임(1년)하면서 최장수 신보 이사장 기록을 이어 가고 있다.

안 이사장이 행운의 연임을 누리고 있다면 김주현 예금보험공사 사장은 반대로 불운한 사례로 꼽힌다. 재무부 출신인 김 사장은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과 사무처장 등 요직을 거치며 승승장구했지만 예보 사장으로 옮기면서 차관을 해보지 못하고 공직을 마감했다.

배경은 이렇다. 5월 임기가 끝나는 예보 사장을 공모했지만 지원자가 없었다. 두 차례 공모에도 신임 사장을 뽑지 못하자 세 번째 공모에 금융위 사무처장이었던 김 사장이 등 떠밀리듯이 나가게 됐다. 구인난이 생긴 건 정권 말에 공기업 사장이 되면 임기를 제대로 마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 탓이었다.

기관장 선임에 난맥상이 벌어지는 원인은 후보들의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급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배경에는 정권 임기와 따로 노는 기관장 임기 문제가 놓여 있다. 정권 초기에는 공신(功臣)은 많고 자리는 부족해 임기가 한참 남은 기관장들을 억지 사퇴 시키려다 잡음이 나고 정권 말에는 적임자가 없어 구인난이 생기는 것이다.

현행 공기업 기관장 공모제는 이론적으로는 이상적인 제도다. ‘낙하산’에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국내 정서에도 맞다. 문제는 정권이 여야로 교체되면서 정권을 잡은 쪽이 공모제의 허울 아래 공기업 인사를 좌지우지해 사실상의 엽관제(Spoil system)로 변질됐다는 점이다. 엽관제가 시작된 미국에서는 말 그대로 당당하게 관직을 사냥하지만 국내에서는 감추면서 하다 보니 ‘대국민 사기극’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현실이 그렇다면 제도를 바꾸는 것은 어떨까. 공기업뿐만 아니라 사실상 정부가 임면권을 행사하는 각종 협회장의 취임 날짜를 정권 출범과 맞추고 임기는 2년 6개월로 바꾸는 것이다. 잘하면 연임을 시켜 정권 끝까지 같이 가게하고, 그렇지 않으면 경질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안 나가겠다고 버티는 사람도, 임기 끝나기 전에 내쫓는다고 항의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2년도 아니고 3년도 아닌 어정쩡한 임기에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기관장 임기가 꼭 1년 단위일 이유는 없다. 2년 또는 3년의 임기를 다 못 채우는 기관장이 더 많은 게 현실이기도 하다. 제2의 안택수가 나와서도 곤란하겠지만 제2의 김주현이 나와서도 안 된다. 그들 개개인의 행운과 불행을 논하는 게 아니고 해당 기관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다.

황진영 경제부 기자 buddy@donga.com
#사기 공모제#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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