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승건]英국민은 왜 패럴림픽에 열광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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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건 스포츠레저부 기자
이승건 스포츠레저부 기자
장애인 스포츠는 재미없다. 비장애인 스포츠와 비교해 덜 빠르고, 덜 높이 뛰고, 덜 힘차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낀다.

영국 런던에서는 제14회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이 한창이다. 대회 슬로건은 얼마 전 막을 내린 올림픽과 같은 ‘하나의 삶(Live As One)’.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대회의 의미를 잘 반영한 문구라는 생각이 든다.

2일(한국 시간) 엑셀 런던 노스아레나에서는 유도 남자 100kg급 결승전이 열렸다. 한국의 시각장애 선수 최광근이 미국의 마일스 포터를 한판으로 꺾고 금메달을 땄다. 스포츠가 늘 그렇듯 감동적이었지만 정작 놀란 것은 직전에 열린 남자 90kg급 준결승전이었다. 응원석을 꽉꽉 메운 수천 관중이 동시에 발을 구르고 함성을 지르며 자국 선수를 응원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더 놀란 건 그 뒤였다. 점수를 먼저 얻은 쿠바 선수가 영국 선수의 공격을 피해 다니자 건물이 떠나갈 듯 야유를 보내던 관중은 자국 선수의 패배로 경기가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승자에게 환호를 보냈다. 올림픽을 포함해 여러 국제대회를 현장에서 지켜봤지만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다른 경기장도 마찬가지다.

궁금한 점들이 생겼다. 재미가 없다는 장애인 스포츠를 보기 위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을 찾아 목청을 높일까. 그중 ‘동원한 인원’이 있다면 어느 정도일까. 아무리 자국 선수라지만 관중은 그 선수의 이름을 들어 보기나 했을까….

문득 지난해 이맘때 대구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떠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높이 뛰고, 가장 힘센 스타들이 모두 모였는데도 우사인 볼트 등이 출전하는 몇몇 이벤트를 빼곤 관중석에는 주인 없는 의자가 훨씬 많았다.

‘육상 불모지’ 한국이 공들여 개최한 그 대회를 폄훼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재미로만 따지자면 패럴림픽보다 몇 배는 더 재미있는 이벤트가 왜 그랬던 걸까. 한국 선수들의 성적이 신통치 않은 것도 한 이유겠지만 그게 다는 아닌 것 같다. 지난달 31일 한국과 중국의 골볼 경기가 열린 코퍼복스는 평일 낮인데도 런던 시민들로 가득했다.

올림픽에 비해 패럴림픽에 대한 관심이 덜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가 협의해 올림픽 유치 도시가 패럴림픽을 의무적으로 개최하도록 한 것도 장애인 체육 혼자서는 아직 제대로 설 수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 체육은 숨어 있는 장애인들이 사회로 나올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자 통로다. 재미로만 판단할 수는 없는 영역이다. 세상이 재미로만 사는 것은 아니니까. 하나 더 있다. 장애인 체육의 활성화는 일종의 사회적 보험이다. 우리는 모두 장애인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으니까. 이번 패럴림픽을 보면 영국이 선진국이라는 데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중요한 건 그래서 관심이다. 뭐든 관심을 가지면 익숙해진다. 익숙해지면 즐길 수 있다. 홍보 효과도 크지 않을 텐데 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을 후원하는 등 관심을 보여준 한국청과㈜, 신한은행, 네이버 등의 기업들이 고마운 이유다.

관심을 갖고 보면 장애인 체육도 재미있다. 말도 못하고 혼자 움직일 수도 없는 선수들이 누구보다 정교하게 공을 굴리고, 휠체어를 탄 채 42.195km의 마라톤 풀코스를 2시간도 안 돼 주파한다. 사격과 양궁은 웬만한 비장애인 선수들의 기록을 뛰어넘는다. 그 재미있는 스포츠의 하이라이트가 이번 주에도 계속된다. <런던에서>

이승건 스포츠레저부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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