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士人과 勳臣, 5·16을 논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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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훈신(勳臣)=5·16은 당시로선 군사정변이 맞지만 그 후 역사 발전의 측면에서 단순히 쿠데타라고 폄하할 수 없다.

사인(士人)=쿠데타라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딱한 표현이다. 박근혜 의원은 최근 “5·16을 쿠데타로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아뇨”라고 명확히 답했다. 주군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생각을 돌려보려니 쉽진 않겠다.

훈신=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은 정몽주에게 물으면 역성혁명이라고 하겠지만 그 손자인 세종에게 물으면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박 의원도 세종과 같은 처지다.

괜한 것에 불꽃 튀기는 정치싸움


사인=역성혁명이라 함은 왕조의 천명(天命)이 다해 왕조를 바꾸는 것. 정도전에게라면 몰라도 정몽주에게 조선 건국은 찬탈(簒奪)이지 역성혁명이 아니다. 비유가 잘못됐다.

훈신=사인이란 본시 조선 건국도 찬탈, 세조의 계승도 찬탈, 인조반정도 찬탈이라며 늘 권력에 시비를 붙는 자들 아닌가. 그런 자들에게 조선의 정통성이 어디 있겠으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어디 있겠는가.

사인=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건 무엄한 논리다.

훈신=프랑스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1799년 쿠데타와 그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의 1851년 쿠데타에 대한 평가는 하늘과 땅 차이다. 5·16도 전두환 노태우의 12·12와는 다르다. 나폴레옹은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유럽에 전파했다. 헤겔이 그를 보면서 “저기 시대정신이 걸어간다”고 하지 않았나. 박정희도 경이적인 경제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혁명과 쿠데타 사이에 ‘폄하할 수 없는 쿠데타’를 둘 수 있지 않을까.

사인=말이 교묘할수록 뜻은 멀어지는 법. 그 폄하할 수 없는 쿠데타의 귀결은 어떠했나. 나폴레옹의 쿠데타는 왕정 독재로 이어졌고 5·16쿠데타는 유신 독재로 이어졌다. 결국 나폴레옹은 외딴섬에 유배돼 생을 마쳤고 박정희는 심복의 총에 맞아 죽었다.

훈신=두 쿠데타는 혁명의 부정(否定)이라는 형식을 취하면서 혁명의 성과를 거뒀다. 쿠데타냐 아니냐 하는 이분법으로 단순하게 재단할 수는 없고, 역사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정치인의 평가가 아니라 역사가의 평가에 맡기는 것이 옳다.

사인=5·16이 역사적 평가의 장에서 정치의 장으로 다시 나온 것은 박 의원 자신 때문이다. 박 의원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아버지 시대의 산업화가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데 분격해 정치에 뛰어들었다. 박정희의 딸이 다시 대통령이 되는 사건 자체가 5·16에 대한 평가를 바꿀 것이다.

훈신=조선시대 예송(禮訟) 논쟁이 생각난다. 효종 대비(大妃)의 상을 1년상으로 해야 하느니 3년상으로 해야 하느니 서인과 남인이 피터지게 싸웠으나 백성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었는가. 지금 5·16 논란도 괜한 것에 불꽃을 튀기는 싸움이 아닌가.

박근혜, 왜 가볍게 못 빠져나오나


사인=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논란에서 가볍게 빠져나가는 것도 대통령이 될 사람의 자질이다. 5·16은 어차피 뒤집을 수 있는 역사도 아닌데 ‘군사혁명의 성격을 가진 쿠데타’라고 말해버리는 ‘가벼움’이 박 의원에게는 어려운가 보다. 아버지 정신의 계승은 그가 정치인으로 출사한 이유이다. 박 의원에게 2007년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경제 세우자)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경제민주화로 구호를 바꾸는 표변(豹變)은 가능했을지 몰라도 2007년에 본인이 말한 구국의 혁명을 쿠데타로 바꾸는 표변은 그래서 힘든 것이다. 아들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아버지를 넘어서지만 딸은 엘렉트라 콤플렉스(부녀애)에 사로잡히는 걸까.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송평인 칼럼#박근혜#5·16#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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