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상훈]포괄수가제와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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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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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다음 달 1일부터 포괄수가제가 시행된다. 대한의사협회는 시행 첫날부터 1주일간 제왕절개와 맹장 등 응급수술을 제외한 수술을 거부하기로 한 당초 방침을 밀어붙이고 있다. 포괄수가제는 질병의 경중에 따라 미리 정해진 금액을 내는, 일종의 진료비 정액제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병원이 수익을 더 내려고 저가 의료재료를 쓸 것이고 진료가 하향평준화돼 환자들이 양질의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게 의협의 주장이다.

칼로 두부 자르듯 이 주장의 옳고 그름을 가릴 수는 없다. 다만 우리보다 앞서 이 제도를 시행한 나라의 경험에서 지혜를 얻을 수는 있다. 기자는 2002년 이 제도를 도입한 독일 사례를 취재하기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미국계 병원을 2008년 찾은 적이 있다.

당시 그 병원의 심장 전문의도 이 제도가 썩 내키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포괄수가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때로 환자 진료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고 말했다. 포괄수가제가 시행되면 의료의 질이 떨어진다는 의협의 주장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해석’은 달랐다. 환자 진료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이야기는 행정업무가 많아져 의사들이 힘들어졌다는 뜻이라고 했다. 질병별로 매겨진 등급에 따라 꼼꼼히 서류 작업을 하지 않으면 사후에 진료비를 삭감당할 수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의사들이 서류 작업에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하는 게 불만이었던 것이다.

국내의 경우 맹장수술은 12개, 치질수술은 21개 등급으로 분류해놓았다. 10여 년의 시범사업도 거쳤다. 의사들이 서류 작업에 매달릴 필요는 크게 없다는 게 병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환자의 반응은 어떨까. 당시 독일 병원에서 만난 60대의 당뇨병 환자는 “제도가 불편하지 않다”고 말했다. 포괄수가제하에서는 등급에 따라 입원일수가 정해져 있다. 따라서 더 입원하고 싶어도 퇴원해야 한다. 이 환자는 “의사를 믿기 때문에 불만이 없다”고 말했다.

환자는 의사를 믿고, 의사는 그런 환자의 바람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의사는 저가 의료재료를 몰래 쓰지 않았다. 이 병원의 사례를 통해 유추하자면, 이 제도의 성공은 의사와 환자의 커뮤니케이션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이 해법을 의협은 수용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게다가 정부가 영리병원을 도입하기 위해 포괄수가제를 시행하려 한다는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포괄수가제를 도입하면 의료비 가격통제가 쉽고, 의료기관의 경쟁력이 판가름 나면서 영리병원이 들어서기 좋은 환경이 된다는 논리다. 이 논리대로라면 포괄수가제는 영리병원 도입을 위한 기반 다지기가 된다. 의협은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한 대학에서 “건강보험이 100% 보장 못하니 개인이 민간보험에 들어 보완해야 한다”고 말한 점을 음모론의 근거로 제시했다.

이 음모론에 정치적 셈법이 숨어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영리병원에 반대하는 국민 정서에 의협이 편승해 포괄수가제 반대 여론을 끌어내려 한다는 것이다. 의협이 이 제도의 찬반 여론을 묻겠다는 시점에 음모론이 나왔다는 점이 이런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의협의 의혹 제기가 나중에 사실로 드러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포괄수가제의 테두리 안에서 논쟁을 해야 할 때다. 환자와 국민은 피로하다. 논쟁이 정치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의사와의 소통이다. 의협은 그 소통을 거부하지 말라. 환자를 잃으면 그 모든 것을 얻어도 의사는 다 잃은 게 된다. 이 소박한 진실을 의사들이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corekim@donga.com
#@뉴스룸#김상훈#포괄수가제#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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