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고기정]‘불임(不姙)의 나라’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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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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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지난주 중국은 두 여성 때문에 열광하고 분노했다. 한 사람은 중국 최초 여성 우주인인 류양(劉洋·34)이다. 다른 한 명은 지방정부에 의해 임신 7개월 된 둘째 아이를 낙태당한 펑젠메이(馮建梅·22)다. 류양이 국가가 키운 성공한 중국 여성이라면 펑젠메이는 정부에 의해 인권이 유린된 시대의 희생자다. 신분과 지위에서 비교할 수 없는 둘은 역설적이게도 비자발적인 출산 포기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류양은 공군 소령으로 전투기 조종사다. 같은 부대의 공군 장교와 결혼했지만 아직 아이가 없다. 그는 혹독한 우주인 훈련이 시작된 2010년 이후 2년간 단 하루도 밖에 나가지 못했다. 그는 “훈련 기간 동안 나는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말했다. 첫 여성 우주인이라는 타이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개인적 영광이겠지만 중국의 우주공정에 대한 집착을 감안하면 뒷맛이 개운치 않다. 사실 류양은 속성으로 육성된 측면이 강하다. 중국은 첫 유인 우주선을 쏘아 올린 2003년 이후 9년 만에 여성 우주인을 배출했다. 미국이 첫 여성 우주인 샐리 라이드를 탄생시킨 건 첫 유인 우주선 ‘머큐리 캡슐 7호’(1962년) 이후 21년 만이었다.

중국은 작년까지도 유인 우주 도킹을 시도할 ‘선저우 9호’에 여성을 탑승시킬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성 우주인 후보군을 선발하긴 했지만 올해 하반기에 발사될 선저우 10호를 염두에 뒀다. 뒤늦게 선저우 9호에 여성을 태우기로 결정한 건 정치적 욕구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올가을 권력교체를 앞두고 국민을 하나로 결집할 국가 이벤트가 필요했다는 해석이 많다.

선저우 9호의 발사 시기가 늦어진 점도 이런 정황을 반영한다. 선저우 9호와 도킹할 실험용 우주 정거장 ‘톈궁(天宮) 1호’의 궤도가 지구와 가장 가까웠을 때는 올해 초였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선저우 9호가 연초에 발사될 것으로 내다봤다.

산시(陝西) 성 안캉(安康) 시의 펑젠메이는 이달 초 인구계획 부서 공무원들에게 끌려가 둘째를 강제유산 당했다. 그는 수술대에 오를 때 가족에게 전화도 하지 못했다. 인터넷에는 낙태한 아이가 펑젠메이의 옆에 놓여 있는 처참한 사진도 돌고 있다. 펑젠메이가 낙태를 당한 이유가 둘째 아이 출산에 따른 벌금 4만 위안(약 720만 원)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진술이 나오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다.

국가의 고도성장은 그 자체로 축복이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전체주의 체제에서 국가의 성장은 개인에게 희생과 재앙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포르셰나 BMW 등 명차들이 점령하고 있는 베이징(北京)의 도로변에서는 2위안(약 360원)짜리 국수로 점심을 때우는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중국은 이처럼 성장의 과실이 고루 분배되지 않을뿐더러 그에 대한 비판과 항거는 용납되지 않는다. 이달 초 톈안먼(天安門) 사태 23주년을 맞아 바링허우(80後·1980년 이후 출생자) 몇 명에게 당시 사건을 물어보자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톈안먼의 고민은 개혁·개방 이후 누적된 불평등과 민주주의의 결핍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지금 젊은이들도 공평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톈안먼 세대와 지금 세대는 정치적 확장성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23년 전에는 100만 명의 젊은이가 톈안먼 광장을 메웠지만 지금은 사이버 공간에서만 와글와글할 뿐 정치적으로 철저히 고립돼 있다.

현 중국 지도부의 모토는 ‘허셰(和諧·조화)’이다. 하지만 국가는 아직 개인과의 조화를 거부하고 있다. 중국의 굴기(山+屈 起)가 거북하게 느껴지는 건 자유와 인권의 불임(不姙) 현상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koh@donga.com
#중국#류양#펑젠메이#허셰#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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