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최영해]백악관서 웃음꽃 피운 전현직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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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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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이스트룸(East Room)은 백악관에서 가장 큰 리셉션 룸이다. 지난해 10월 미국을 국빈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백악관 행사를 취재할 때 기자가 가장 많이 찾아간 곳이기도 하다. 취재를 하다 보면 오바마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참전 군인들에게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의 훈장’을 수여하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동료 부대원에게 날아온 수류탄을 잡아채 동료의 목숨을 구하고 자신은 오른손을 잃은 ‘강철 영웅’ 르로이 페트리 상사, 명예의 훈장을 준다는 소식을 전하려는 대통령 전화를 업무 시간이라는 이유로 받지 않아 화제가 됐던 다코타 마이어 해병대 병장은 여기에서 훈장을 받았다. 지난달 사후 42년 만에 명예의 훈장을 받은 베트남전 참전 용사 레슬리 세이보 상병의 부인 로즈메리 세이보 브라운 씨도 이스트룸에서 오바마 대통령 부부와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명예의 훈장이나 각국 정상들과의 기자회견장으로 활용됐던 이스트룸에서 최근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지난달 31일 열린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부인 로라 부시 여사의 초상화 공개 행사였다.

2008년 대선 때 부시 전 대통령의 실정(失政)이 금융위기를 불러왔다고 공격한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주인이 바뀐 뒤 부시 전 대통령과 두 번째로 만나는 자리여서 미국 언론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부시 전 대통령은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때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백악관을 찾아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구조 활동에 적극 나설 것을 다짐했다.

정적(政敵)이었던 두 사람의 회동이 어색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스트룸에선 웃음꽃이 만발했다. 4년 전 부시 대통령을 거세게 몰아붙였던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최고의 예우를 갖췄다. 경제를 살리려고 당파를 떠나 노력했다며 부시 대통령을 칭찬했고, 알카에다의 9·11테러로 미국이 곤경에 빠졌을 때 그가 보여준 리더십을 극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모든 대통령은 백악관이 일시적인 거주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현직 대통령은 지금 단지 이곳을 빌려 쓰고 있을 뿐”이라며 자신도 언젠가 이곳을 떠나는 전직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부시 전 대통령도 시종 여유를 부리며 좌중을 웃겼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농담을 건네는 것은 물론이고 미셸 오바마 여사에게도 “백악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초상화부터 먼저 챙겨 달라”고 말해 폭소가 터졌다.

미셸 여사와 로라 여사가 나눈 덕담도 행사장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행사 후엔 이스트룸에 딸린 리셉션장에서 따로 축하 뒤풀이 행사가 이어져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의 화기애애한 장면은 이어졌다. 부시 전 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나면서 현실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퇴임 후 약속을 지키면서 정치적인 발언은 삼갔다. 전현직 대통령이 서로 얼굴을 붉힐 만한 일도 없었다.

5년 단임제인 한국에선 임기 마지막 해엔 레임덕으로 정신이 없다. 정권교체 후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의 관계는 한시도 편안한 적이 없는 팽팽한 긴장관계였다. 전현직 대통령이 함께 참석한 이날 이스트룸 행사를 지켜보면서 우리도 전직 대통령 초상화를 선보이는 행사를 전직 대통령과 가족, 참모들을 초청해 청와대에서 가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현직 청와대 참모들이 함께 웃음꽃을 펼치는 축제의 자리에서 말이다.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yhchoi65@donga.com
#이스트룸#백악관#오바마 대통령#이명박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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