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종훈]佛‘보통 대통령’ 올랑드의 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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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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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파리특파원
이종훈 파리특파원
‘보통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3주가 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소탈함과 파격, 페미니즘이 호사가들에게 적잖은 입방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취임식에 가족과 친척을 초대하지 않았던 그는 발레리 트리르바일레 여사와 살던 파리 15구의 집을 계속 쓰겠다는 뜻을 밝히는가 하면 행사에 갈 때마다 난데없이 행인들과 악수를 하고 대화를 하는 일이 잦아 경호팀을 당황하게 만든다고 한다.

지난달 23일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EU) 특별정상회의 때는 고속열차를 이용하는 바람에 소동이 벌어졌다. 유세 때 “대통령이 되면 가까운 곳은 열차를 타고 가겠다”고 했던 약속을 실제 지킨 것. 파리 북역에 갑자기 경호원이 깔리면서 시민이 놀란 건 물론이고 같은 열차를 탄 승객들이 혼란을 겪었다. 문제는 정상회의가 끝난 뒤에도 이어졌다. 시간이 늦어져 파리로 오는 기차가 끊긴 것. 결국 한밤에 대통령과 장관 등 30여 명의 VIP를 태우고 돌아오기 위해 관용차 8대가 부랴부랴 동원됐다.

이를 두고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이었던 앙리 기에노 씨는 “기차를 탄 건 프로답지 못하다. 대통령은 평범하게 살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이 기차를 타면 일반인의 불편은 말할 것도 없고 폭탄 제거를 위한 경호원과 개의 순찰, 열차 내 안전거리 확보, 여행 경로에 있는 다리들의 보호를 위해 많은 경찰과 헌병이 동원되는 등 경호의 어려움 외에도 인력 소모와 비용이 더 크다는 것이다.

한국계 입양인 플뢰르 펠르랭 씨(39)가 ‘담당장관(Ministre d´el´egu´ee)’이 된 1기 내각도 흥미롭다. 장관 34명 중 남녀가 17명씩으로 사상 첫 남녀평등 내각이라는 별칭도 붙었는데 펠르랭 장관보다 어린 여성이 3명이나 있다.

정부대변인 나자트 발로벨카셈 여성인권장관은 1977년생으로 35세다. 실비아 피넬 통상·관광장관은 발로벨카셈 장관보다 생일이 한 달 빠르다. 국무회의 첫날 청바지를 입어 논란이 된 주택장관 세실 뒤플로 녹색당 대표는 37세다. 오렐리 필리페티 문화·통신장관은 펠르랭 씨와 동갑이다. 한국이라면 30대 여성들이 장관이 되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그렇다면 프랑스는 고위직도 남녀가 평등하고 여성 인재풀이 훨씬 많을까. 프랑스에서 정치권은 가장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곳이다. 사회당 거물이었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 총재의 뉴욕 호텔 여종업원 성폭행 의혹 사건이 프랑스에서 일어났다면 경찰과 내무부가 비밀리에 처리하고 덮어버렸을 것이라는 게 언론들의 평가다. 현재 하원 577석 중 여성 의원은 107명(18.5%)으로 사상 최고이다. 여성 의원의 비율이 처음 10%를 넘은 것은 1997년 총선(10.9%·63석)으로 그전까지는 6.1%(35명·1993년 총선)가 가장 높아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프랑스에서 최초로 여성 정치학 교수가 나온 게 불과 30년도 안 된 1986년이다.

리베라시옹지는 최근 “올랑드 내각의 34개 부처 중 22개 부처에서 핵심 자리인 기획실의 보좌관은 100% 남성이 임명됐다”며 “기획실은 남녀동수 원칙이 전혀 적용되지 않고 국립행정학교(ENA) 출신 백인 남성 카스트가 지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때문에 17명의 여성장관은 ‘쇼윈도 장식’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어쨌거나 대통령과 총리의 지지도는 60%를 훌쩍 넘어 역대 최고 수준이다. 대통령과 장관의 보수를 30% 줄이고 공기업 사장의 임금을 평균 절반이나 깎는가 하면 굽실거리기만 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성장이 우선”이라고 큰소리치는 대통령을 보며 프랑스 국민은 신이 난 표정이다.

이종훈 파리특파원 taylor55@donga.com
#보통 대통령#올랑드#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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