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찬식]대학평가 다양화로 서열화 폐해 줄이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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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식 인천대 도시건축학부 교수
이찬식 인천대 도시건축학부 교수
한국 대학사회에 경쟁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교수들의 연구역량을 키우고 교육을 잘 시켜 고용 가치가 높은 학생들을 배출하기 위해 경쟁이 필요하다는 당초의 생각은 최근 서열순위 경쟁으로 변했다. 대학평가 기관들은 대개 연구 성과를 중시해서 연구중심 대학이 상위 랭킹을 차지한다. 질 좋은 교육을 실시하지만 연구 성과가 떨어지는 교육중심 대학은 평가 순위가 낮아지게 된다. 대학 평가는 교수들의 논문 발표를 촉진하고 학생들의 취업률 향상에 기여한 반면 대학의 특성과 발전 목표, 계열별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단일 척도를 사용해 평가 결과가 대학 소재지와 규모, 계열 구성 등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인문학 등 기초학문의 내용과 질을 평가하는 항목이 거의 없어 대학교육의 품질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최근 정부는 취업률, 재학생 충원율, 학사관리 및 교육과정 등의 지표와 정부시책 순응도 등을 평가해 재정지원 여부 결정에 반영하고 있다. 부실했던 고등교육 정책을 단기간 실(實)하게 만들어 볼 태세로, 교육과학기술부는 많지 않은 재정지원을 무기로 다양한 채찍을 휘두르고 있다. 대학들은 교과부의 정책적 요구사항을 맞추는 데 혈안이 돼, 특징 있는 발전계획 수립은 엄두도 못 내는 실정이다.

한국의 대학 사회는 지역 사회와 산업계의 요구를 수용하려는 의지나 속도가 다른 분야에 비해 떨어지는 게 사실이어서 지속적 발전을 위해선 건전한 경쟁과 변화가 절실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가치에 종속된 무한경쟁과 평가에 따른 서열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순위는 평가지표에 따른 성적일 뿐 대학의 모든 것을 평가한 결과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은 외부 평가기관의 평가 결과라기보다는 석학(碩學)의 수나 학생들의 만족도 등이다. 석학은 학계의 평판으로 결정되지, 논문 수나 논문인용지수로 정해지지 않는다. 연구능력 위주로, 대학 구조조정의 목적으로 평가하는 현재의 방식은 개별 대학의 특성을 배제해 교육을 획일화하고 대학 본연의 기능에서 일탈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종합평가보다는 개별 평가지표로 평가 결과를 구분해 판단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백화점식 교육을 실시하는 대학보다 특성화된 분야에서 정예 교육을 시행하는 대학이 좋은 평가를 받는 방식으로 평가체계를 다양화할 필요도 있다. 지난해부터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시행하는 ‘대학기관평가인증’ 제도는 54개의 평가준거에 대해 인증, 조건부인증, 인증유예, 불인증 등 4개의 유형으로 판정해 서열화 등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바람직한 방식으로 생각된다.

교수들이 대학평가와 무관하게 학문에 열정을 쏟고, 스펙을 쌓기보다는 진리탐구와 창조적 지성을 함양하려는 학생들로 북적거리는 대학 사회와 문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유럽대학협회(EUA)가 지적한 것처럼, 대학은 평가순위를 끌어올리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찬식 인천대 도시건축학부 교수
#기고#이찬식#대학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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