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정책 대결, 기대는 또 무너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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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 정치부
이승헌 정치부
이번 4·11총선은 연말에 치러질 대선 전초전으로 불렸다. 대선 풍향계라는 의미와 함께, 대선을 준비하는 각 당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꾸겠다는 대안과 포부를 정책을 통해 엿볼 수 있다는 기대가 담긴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기대는 무너졌다. 각 당이 정치 경제 복지 등 주요 분야의 정책을 제시했으나, 정작 이를 놓고 별다른 대결을 벌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정책대결을 뜻하는 ‘매니페스토’는 말뿐이었다.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았기에 상호 검증은 생략됐고, 조 단위의 숫자와 무지갯빛 정책 아이디어의 홍수 속에 유권자들은 어떤 정책을 누가 만든 것인지조차 알기 어려웠다. 술집 호객꾼들도 살아남기 위해 손님들에게 왜 자기네 가게가 옆집보다 좋은지 설명하느라 경쟁하는 세상에서 말이다. 정책대결이 벌어질 자리에는 술집에서도 듣기 어려운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서울 노원갑)의 막말과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둘러싼 여야 진실게임 등 네거티브 공세만 난무했다.

이번 총선을 되돌아보면 기성 정치권은 유권자의 판단을 돕기 위한 정책대결을 일부러 피한 듯한 인상마저 준다. 지난달 16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던 각 당 정책위의장 초청 정책토론회는 돌연 새누리당 측이 불참하기로 해 무산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최한 공직선거정책토론회는 각 당 공천이 마무리되기 훨씬 전인 1월 30일, 2월 24일, 3월 5일 열렸다. 공약을 정책으로 만들 후보군도 모르는 상황에서 정책을 이야기했으니 허공에다 글씨를 쓴 격이다.

그나마 복지는 여야가 정책대결을 벌일 만한 분야였다. 하지만 지난달 새누리당이 2013년부터 5년간 최대 89조 원, 민주당은 같은 기간 164조7000억 원을 들여 복지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양당의 복지 논쟁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양당 모두 구체적인 재원조달 방안을 제시하지 못해 비판을 받았기 때문에 정책대결을 이어가봤자 서로 상처만 입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동아일보 매니페스토 자문교수단을 이끌었던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양당 모두 실현 가능성이나 구체성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가 사활을 걸 대선에서 정책대결을 기대하는 건 더욱 요원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 밖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최근 대학 특강에서 자신만의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여야의 정책 실종을 비판하는 것만으로 대중이 열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업자득이다.

이승헌 정치부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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