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등 재난 발생 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통신망을 하나로 통합 운영하는 국가재난안전통신망(재난망) 구축 사업이 장기표류하고 있다.
2003년 시작한 재난망 구축사업은 그동안 경제성과 특정업체 독점 시비에 휘말려 신속하게 결정되지 못했다. 특히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사업 타당성 재조사를 벌인 결과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 사업이 전면 백지화되기도 했다. 지난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재난망 사용 기관의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받았다. 재난망 구축 사업에 포함된 산림청 등 1100여 개 재난관련 기관이 필수기관에서 빠진 탓에 비효율적이란 것이다.
이에 따라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재난망 정책방향 수립을 위한 연구’ 착수 보고회를 갖는 등 감사원과 KDI가 지적한 문제점을 해소하고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행안부는 지난해 한국정보화진흥원(NIA)에 기술 검증을 의뢰했고, NIA는 자가망 형태의 특정 기술 방식이 재난망 기술로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국가 존망이 걸릴 수도 있는 재난망이 특정 시스템 하나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3월 일본 동북지역에서 대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이 발생했을 때 일본 정부가 비상시 통신망 생존성 극대화를 위해 운용해온 중앙방재무선통신망, 소방방재무선통신망, 광역·기초지자체 방재행정망 등 8개 방재무선시스템이 모두 불통이 됐다는 것은 단일 방식의 재난망 구축이 안고 있는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행안부는 이 같은 지적에 따라 경제성이 있는데도 비표준 기술이라는 이유로 1차 기술검증에서 빠졌던 상용망 검토를 핵심으로 하는 재난망 2차 기술검증을 벌이는 등 보완작업을 하고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환영할 일이다. 재난망 구축이 특정 기술에 대한 종속 문제와 과도한 사업비에 대한 근본 해결책 없이 진행된다면 재난 발생 시 통합망 불통은 물론이고 통합망 구축 사업과 이름만 다를 뿐 내용은 실질적으로 같다는 논란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재난망 구축사업은 더는 지연돼서는 안 될 중요한 국책사업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제 재난이 발생한 긴급·비상상황에서 불통될 개연성을 도외시한 채 서둘러 대안을 선택한다면 자칫 제2, 제3의 더 큰 재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재난망의 경제성 확보와 생존성 극대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술 방식과 다양한 재난 상황, 재난 관련기관 간의 공고한 협력체계 구축 등을 고려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기존 재난망과 이미 수십 년간 망을 구축하고 운영해온 통신사업자들의 상용망을 상호 연동해 충분한 백업망을 확보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통신망 구축과 운용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통신사업자들의 다양한 제안을 유도해 경제성을 확보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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