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유재동]16년 전의 어느 기억, 그리고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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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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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동 경제부 기자
유재동 경제부 기자
1996년 나는 총학생회 취재를 맡은 대학 학보사 기자였다. 당시 학생회는 이른바 민족해방(NL) 계열이 잡고 있었다. 현재 통합진보당의 주요 계파로 남한을 ‘미국의 식민지’로 규정한 ‘반미(反美) 자주파’다. 그때 겪은 일 중에 16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어느 날 학생회를 취재하고 나오는 길에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러 세웠다. 평소 친분이 있던 학생회 간부였다. 그는 “조언을 해주고 싶은데 앞으로 가급적이면 그 티셔츠를 입고 학생회에 오지 말라”고 했다. 무슨 말인가 싶어 입고 있던 옷을 봤다.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등 미국프로농구(NBA) 드림팀의 멤버가 성조기와 함께 그려진 티셔츠였다. 하필 그날따라 학생회 분위기가 왜 그리 냉랭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나를 생각해 해준 말이었겠지만 쓴웃음이 나왔다. 난 그저 농구를 좋아했을 뿐이었다.

몇 달 뒤였다. 우리 대학 학생회장은 그해 8월 ‘한총련 사태’의 핵심 인물로 수배돼 도피생활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경찰의 감시망을 피해 캠퍼스에 번개처럼 나타나 연설을 하고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며 학교가 어수선해졌다. “쇼를 하는구먼.”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멀리서 이 말을 들은 또 다른 학생회 간부가 달려와 내 멱살을 잡았다. “감히 우리 회장님한테 뭐라고? 쇼?”

내 옷을 문제 삼고, 멱살을 잡았던 사람들이 당시 일을 기억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스무 살의 어린 나이였던 필자에겐 꽤 충격이었다. 내가 이들과 멀어지게 만든 중요한 계기도 됐다. 편협하고 교조적이며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력이 과연 민주주의를 외칠 자격이 있을까 의심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들은 순수했다. 내 기억으론 대부분 사리사욕 때문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학생운동을 했다. 회의만 하면 토론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사회에 대한 절망과 고민에 눈물도 흘렸다. 하지만 이들의 신념과 방식은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이듬해 학생회 선거에선 비(非)운동권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

16년 전 얘기가 지금과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도 본질은 그다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당시 학생운동 세력은 대거 제도권에 흘러들어가 당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하고, 30대 대기업을 3000개로 쪼개겠다는 무시무시한 공약을 쏟아낸다. 경제담당 기자로서 그들의 주장이 실현되면 ‘국민과 국가가 함께 망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거리의 화염병이 국회의 최루탄으로 바뀌었을 뿐,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제 화염병 시위는 없어졌다. 한총련은 사실상 와해됐다. 통진당은 “구시대적 색깔론” “다 옛날 얘기”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옛날 얘기는 지금 묵직한 현실로 국민 앞에 다가오고 있다. 총선 및 대선 결과에 따라 이들은 다음 정권의 한 축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몇몇 소수의 개인사라면 모르지만 정권을 잡으려는 공당(公黨)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민은 속속들이 알 권리가 있다. 그동안 무슨 일을 했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북한에 대한 시각은 어떻게 변했는지, 지금은 나라의 장래를 위해 무슨 비전을 갖고 있는지 터놓고 말해야 한다. 영예롭지 못한 과거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따뜻한 휴머니즘이란 진보의 본래 가치를 되찾는다면 더 많은 국민의 공감을 얻게 될 것이다. 한때 가까이서 지켜봤던 사람으로서 내 딴에는 애정을 갖고 하는 말이다.

유재동 경제부 기자 jarrett@donga.com
#뉴스룸#유재동#학생운동#진보#통합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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