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일진 설치는 ‘폭력 학교’ 공개해야 할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17일 03시 00분


학교폭력 전수(全數)실태 조사 결과 “우리 학교에 일진(폭력집단)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이 100명 이상 나온 학교가 643개였다. 전국 1만1100여 개 초중고교 가운데 5.8% 정도지만 학부모 처지에서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일진이 있다는 건 보통 걱정거리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시골 지역의 작은 규모 학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교에 일진이 있고 전국적으로는 20만∼4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부모와 언론에는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학부모들의 문의가 잇따르자 뒤늦게 “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성과 활용 방안에 대한 검토와 연수를 마친 뒤 학교별 실태의 공개 시점 및 방식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학교별 실태가 공개되면 낙인(烙印)효과 같은 부작용이 생긴다는 설명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해당 학교 학부모들에게는 알릴 필요가 있다. 교장과 몇몇 교사만 알고 쉬쉬하다가는 일진의 폭력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학교폭력이 일어나도 ‘조용히 넘어가는 게 상책’으로 여기는 학교 측의 비밀주의와 무사안일주의가 오히려 문제를 키웠다고 봐야 한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모임’ 최미숙 대표는 “일진 실태를 교과부 홈페이지에 전면 공개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해당 학교 학부모들은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야 학부모들이 경각심을 갖고 학교폭력 문제에 조기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 및 유형을 학교 정보로 공시하고, 가정통신문을 통해 학부모에게 알리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1970년대부터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에 적극 대응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학부모에게 학교폭력 문제를 의무적으로 알리는 것도 그렇게 해야만 학교가 책임감을 갖고, 학부모들의 협조도 커지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에게 학교 실상을 알려주면 일진 학생들도 말썽을 일으키지 않도록 조심하는 위축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서울 은평구 신도고는 지난해 개교할 때만 해도 ‘불광동 휘발유’(문제 학생)가 몰렸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김정일 교장이 문제 학생들을 불러 저녁밥을 먹이면서 관심을 보여주자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본보 기사(15일자 ‘믿고 다가가 이름을 불러주니…그들은 꽃이 되었다’)는 새삼 교육의 힘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교장 교사들의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힘을 보태야만 아이들이 목숨 걸고 학교 다니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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