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재명]극단화의 달콤한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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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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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치부 기자
이재명 정치부 기자
미국 얘기다. 연방 항소법정은 세 명의 판사로 구성된다. 이때 경우의 수는 4가지다. ①공화당 성향 판사 3명 ②민주당 성향 판사 3명 ③공화당 성향 판사 2명에 민주당 성향 판사 1명 ④민주당 성향 판사 2명에 공화당 성향 판사 1명. 각각의 구성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까.

영화 ‘부러진 화살’에 치명상을 입은 한국 사법부는 그러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론 확연히 달랐다. 동성애자의 권리에 관한 재판에서 민주당 성향 판사로만 구성된 법정에선 100% 동성애자의 권리를 지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반면 공화당 성향 판사로만 구성된 법정에선 그 비율이 14%에 불과했다. 성차별에 관한 재판에서도 민주당 성향 판사들을 만나면 공화당 성향 판사들을 만날 때보다 여성이 이길 확률이 46%포인트나 높았다.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캐스 선스타인 교수의 저서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에 나오는 내용이다.

왜 그럴까. 생각이 같은 집단 속에서 사람들은 더 극단으로 흐르기 때문이란다. 내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긴가민가할 때 나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환호성이 터진다. “그럼 그렇지. 내가 틀릴 리 있나.” 자기 확신은 극단으로 치닫는 특급 티켓이다.

이제 우리나라 얘기다. 한국의 ‘입 큰 개구리’들은 대부분 극단주의자다. 이유는 간단하다. 극단적 주장이 논지를 펴기 쉽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광우병 의심 소가 발견됐다. 광우병에 걸리면 죽는다. 그러니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죽는다.” 얼마나 논리 전개가 단순명료한가. 반면 “미국의 검역과정이 어떻고, 수입절차가 어때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수입될 확률은 어떻고….” 복잡하고 어렵다. 설령 내용을 이해해도 다시 설명하려면 머리에 쥐가 난다.

‘극단화 선동꾼’이 득세하는 건 논지가 쉬울 뿐만 아니라 극단화의 발화력이 가공할 만큼 크기 때문이다. 선스타인 교수도 극단화는 억눌려 있는 반발심과 저항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고 지적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느니 청산가리를 먹겠다”는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 분노가 응축된 우리 사회는 극단화 선동꾼에게 최적의 환경이다.

극단화의 위험을 피하려면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모여야 한다. 공화당과 민주당 성향의 판사가 섞이면 판결이 널뛰지 않는 것처럼.

이것이 국회를 만든 이유다. 그런데 이상조짐이 보인다. 4·11총선에서 제1당을 꿈꾸는 민주통합당이 공천의 첫 기준으로 정체성을 내세웠다. 이념의 스펙트럼이 다양한 민주사회에서 똑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끼리만 뭉치겠다는 얘기다.

그 결과가 극단화로 이어질 것임은 뻔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폐기를 넘어 분서갱유의 대상, 재벌은 해체를 넘어 멸족의 대상이 될 터이다. 그렇다고 방향감각을 잃은 새누리당에 극단화를 막으라는 중책을 맡길 엄두도 안 난다. 우리나라에서 여야는 반목과 대립의 앙숙이지 타협과 양보의 파트너가 아니다. 유권자의 권리행사가 자못 두려운 이유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만도 없다. 요즘 시류에서 가장 쉬운 일은 ‘가카’에게 ‘빅엿’을 먹이는 것이다. 이젠 유권자들이 정치권에 물어야 한다. 남의 탓만 하는 ‘가카 빅엿’ 이후 당신들은 무엇을 하려는지를. 극단화 선동꾼들이 어려워하는 건 비판을 넘어 대안을 내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치부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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