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완준]MB 자원외교의 일그러진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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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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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정치부 기자
윤완준 정치부 기자
“나는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훈장을 10개는 받아야 한다. 보도자료를 안 냈으면 또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권 획득을) 몰랐다고 비난했을 것이다. 내가 개발권 (따는 걸) 돕지 않았다면 직무유기라 했을 것이다.”

지난해 6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김은석 외교통상부 에너지자원대사의 목소리는 매우 격앙돼 있었다. ‘CNK가 다이아몬드 개발권을 이용해 부당하게 매매 차익을 실현한 혐의로 금융감독원 조사를 받고 있다. 기업 주장을 검증하지 않고 자원개발협력의 성공 모델로 선전해준 건 문제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한 반응이었다.

▶2011년 6월 13일자 A3면 4억 캐럿 다이아 채굴권 땄다는 업체에 무슨 일이…

당시 김 대사는 “자원외교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보도자료 배포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김 대사가 성과주의에 사로잡혀 냉철함을 잃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7개월 뒤인 26일 감사원은 그의 해임을 요구했다.

‘카메룬 스캔들’은 비즈니스외교, 자원외교를 지나치게 강조한 이명박 정부 외교정책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청와대는 기업의 해외 진출과 자원개발을 돕는 것을 외교관의 지상과제로 훈시해 왔다. 2010년과 2011년 재외공관장회의의 요지는 ‘전(全) 재외공관의 세일즈맨화’였다. 이런 인식은 지난해 이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 준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 외교관은 “청와대가 자원외교 성과가 날 수 있는 현안들만 찾았다”고 전했다. 외교관들이 저마다 자원외교의 첨병을 자처하는 과열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우려의 싹도 커지고 있음을 정부는 몰랐다. ‘카메룬 다이아몬드 보도자료’가 나온 직후 저개발국 외교에 정통한 한 외교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나이지리아를 방문해 석유광구 2곳의 탐사권 계약을 체결한 뒤 자원외교 성과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불과 3년 뒤인 2009년 나이지리아 정권이 바뀌자 계약 무효를 통보한 황당한 사례가 생각난다는 것이었다. 자원외교는 오래 공을 들여도 성과가 날지 불확실한데 당장 가시적 성과가 나올 것처럼 부산을 떠는 건 문제라는 일침이었다.

보도자료가 나간 직후 “기업의 보도자료가 외교부 이름으로 나가면 신뢰도를 누가 보증하며 사업이 중단되기라도 하면 소액주주 피해를 외교부가 책임질 수 있나. 반드시 문제가 될 것”이라던 한 외교관의 우려는 1년 뒤 현실이 됐다. 정부는 ‘외교의 본질은 비즈니스가 아니라 정치적 친구를 만드는 것’이라는 한 고위 외교관의 자성을 곱씹어 볼 때다.

윤완준 정치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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