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나라’로만 알았던 당신의 공화국이 인도적 지원단체 회원 자격으로 남한 기자의 입국을 허락했을 때, 나는 작은 변화의 조짐을 느꼈습니다. 2002년 6월 29일이었지요. 서해에서는 제2차 연평해전이 일어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고려항공에 몸을 싣고 당신의 공화국에 도착했습니다. 여름이 막 찾아오는 평양은 아름다웠습니다. 고려호텔 옆 창광거리의 밤을 수놓은 청사초롱과 흑맥주의 맛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이틀 뒤 능라도 5월1일경기장에서 아리랑축전의 규모에 놀라고 있을 때 당신은 ‘7·1경제관리 개선조치’라는, 제한적이지만 이전보다는 과감한 경제 개혁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나는 그 사실을 한국으로 돌아온 뒤 일본 언론을 통해 알았습니다. 특종을 현장에서 놓친 아쉬움과 부끄러움은 뒤늦게 당신과 북한을 공부하게 만든 계기였습니다.
3년 뒤인 2005년까지 나는 당신의 이름으로 진행된 경제 개혁을 쫓아 4차례 더 방북했습니다. 당신의 부하들은 많은 것을 보여주고 들려주었습니다. 인민과 공장, 기업소, 농장 등 각 경제주체에 생산의 권한을 더 주고 시장 유통을 허용한 조치는 그런대로 괜찮은 아이디어였습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경제난 때 당신의 인민들이 터득한 삶의 지혜를 당신의 이름으로 인정해 준 것이죠.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2005년 가을부터 당신은 돌변했습니다. 개혁으로 알량한 기득권을 빼앗길지 몰라 두려워한 측근 권력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죠. 당신은 경제주체들의 자율성을 빼앗고 시장을 통제하고 국제사회와의 대화를 끊었습니다. 그러곤 다음 해인 2006년 첫 번째 핵실험을 했지요. 당신의 공화국을 도와주면 당신이 고마워하고 지원받은 종잣돈을 잘 불려 주민 생활을 살찌우고 국제사회의 건전한 일원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린 것은 그 무렵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버락 오바마 정부 출범 후 당신이 장거리 로켓과 핵으로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것을 보면서, 건강 이상 이후 끝내 전대미문의 3대 세습을 단행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당신과 당신의 공화국이 얼마나 좁고 낡은 과거에 갇혀 살고 있는지를 깨닫게 됐습니다. 조선중앙TV를 통해 방송되는 당신의 빈소 표정이 17년 전 당신 아버지가 운명했을 때와 하나도 다름이 없는 것처럼.
오늘은 당신의 영결식이 열리는 날입니다. 나는 서울 광화문 스튜디오에서 금수산기념궁전을 떠나 평양 시내를 마지막으로 둘러보는 당신의 모습을 지켜보고 시청자들에게 보도하는 일로 바쁠 것 같습니다. 당신의 아들과 부하들도 영결식을 마치고 3대 세습 권력체제를 다지는 앞날의 일로 몸과 마음이 바쁠 것 같군요.
당신의 아들과 부하들은 당신이 살았을 때 하던 그대로 변함없이 나라를 운영하겠다는 유훈통치를 소리 높여 다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경제난 속에서도 당신의 공화국을 지켜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제적 고립과 정치적 독재, 경제적 파탄이 낳은 피해가 너무나 컸다는 사실은 당신도 아실 테지요.
혹시 가능하다면, 구천에서라도 아들에게 유훈 하나만 더 내려주면 어떨까요. ‘나는 못했지만 너는 공화국의 덩샤오핑이 되어 보라’라고요. 한때 당신의 개혁에 관심을 가졌고 앞으로 당신의 공화국을 계속 지켜보고 기록으로 남겨야 할 사람의 마지막 부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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