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홍준표 대표부터 기득권 버려야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9일 03시 00분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어제 혁신적인 내용의 당 쇄신안을 내놓았지만 사퇴 압박에 몰려 내놓은 탓인지 당 안팎에 주는 감동은 크지 않다. 홍 대표는 그동안 광범위한 의견을 청취하며 쇄신안을 준비했으나 10·26 재·보궐선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등 정치 일정에 쫓겨 발표를 미뤄 왔다고 밝혔다. 정치 행위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진작 쇄신안을 내놓았더라면 최고위원들의 동반 사퇴 같은 자중지란(自中之亂)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쇄신안의 골자는 현역 의원과 당협위원장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과감하게 인재를 영입하는 공천 개혁과 14년 전통의 한나라당을 허물고 당을 완전히 새로 건축하는 재창당이다. 성장과 복지가 조화를 이루고 사회정의가 구체적으로 반영되도록 당 정강 정책과 노선을 전환하겠다는 내용도 관심을 끈다. 당권과 대권의 분리를 규정한 당헌 당규를 개정해 잠재적 대권 주자들이 내년 총선에서 실질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들어 있다.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설 수 있도록 길을 터주겠다는 것이다.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민자당에서 변신을 꾀한 신한국당을 모델로 해서 내년 2월까지 재창당을 완료한다는 구상이다.

그제 선출직 최고위원 3명의 사퇴로 사실상 홍 대표 체제가 붕괴한 마당에 이러한 쇄신안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의문이다. 수도권 초재선 의원들과 쇄신파 의원들의 반발은 상당 부분 홍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그동안 홍 대표에게 힘을 실어줬던 친박(친박근혜) 의원들이 계속 홍 대표와 뜻을 같이할지도 알 수 없다. 쇄신안 자체는 ‘재창당 수준의 쇄신’을 언급한 박 전 대표의 구상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이를 추진할 주체가 홍 대표여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각기 다를 수 있다. 홍 대표에 대한 신임 여부를 확실하게 매듭짓는 일이 우선이다.

한나라당은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과 대선 전망은 암담하다. 홍 대표 체제의 존속 여부와 관계없이 한나라당의 모든 구성원은 사심(私心)을 버리고 비상한 각오로 쇄신에 대한 본격 토론에 들어가야 한다. 홍 대표의 쇄신안을 수정하거나 다듬을 수도 있고, 전체를 거부하고 완전히 새로운 안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쇄신안을 어떤 내용으로 채우고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따라 한나라당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홍 대표부터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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