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코리아/피터 바돌로뮤]전통의 위엄과 아름다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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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바돌로뮤 왕립아시아학회 이사
피터 바돌로뮤 왕립아시아학회 이사
1960년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운 좋게 강릉 선교장에서 지내게 됐다. 아름답게 지어진 조선 사대부의 살림집에서 나는 4년을 살았다. 안채와 열화당, 동별당, 온돌방의 갑창문…. 가장 아름다운 곳은 선교장 정원 연못의 정자인 활래정이었다. 연꽃이 가득 핀 연못 한가운데 누각에 앉아 대관령 풍경을 볼 수 있다.

선교장은 한옥의 품위, 곳곳에서 풍겨 나오는 예술 철학 문학적 향취가 자연풍경과 뒤섞여 아름다운 미(美)를 이룬다. 선교장에서의 생활도 그야말로 ‘전통적’이었다. 아궁이에 불을 때 밥을 짓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셨다. 조선시대 밥상과 가구를 사용했다. 선교장을 찾는 손님들에게 내놓는 차를 덥히는 데도 화로를 썼다. 99칸짜리 고택에서 나는 조선의 문화와 풍습을 배웠다. 그러면서 나는 이제껏 내가 몰랐던 우아하고 기품 있는 문화에 대해 좀 더 알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됐다.

1970년대 서울로 옮겨오면서 ‘과거’로부터 걸어 나오게 됐을 때 나는 서운함을 느꼈다.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선교장 얘기를 했는데 대부분이 한옥의 미를 모른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사람들은 그저 한옥에서 지내는 게 불편하지 않았느냐고 물을 뿐이었다. 요즘도 많은 한국 사람은 한옥 문화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는 것 같다.

나는 오랫동안 한옥에 대해 공부했다. 한일강제병합이 일어난 1910년 무렵까지 조선의 시골마을이 유럽과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다. 물론 ‘조선적인’ 풍경이었다. 돌로 만든 멋진 읍성, 아름다운 누각, 우아한 목조건물인 관아와 객사가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서울의 유명한 다섯 궁궐인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행궁 아홉 곳이 서울 외곽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중에는 수원 화성행궁같이 규모가 큰 곳도 있다. 남한산성이나 북한산성의 위엄 있는 큰 행궁은 건축미학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1945년 광복 때만 해도 서울에는 별궁이 10곳 이상 있었다. 오늘날 남아 있는 별궁은 운현궁뿐이다.

나라 전체가 아름다운 전통의 향연으로 불릴 만했다. 어느 곳을 여행해도 읍성과 관아, 산성, 행궁, 사찰, 서원을 만날 수 있었다. 서울의 궁궐에 이르면 전통의 위엄과 아름다움은 절정에 달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이런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왜 그럴까. 별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일강제병합 시기에 많은 건물이 사라졌다. 남아있는 객사라곤 여수의 진남관과 통영의 세병관 정도다. 남한산성 행궁은 터만 남아 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어 이른바 르네상스로 접어들고 있다. 잃어버린 것의 가치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기업에서 수천억 원을 들여 이 특별하고도 의미 있는 전통의 위엄을 회복시키려 하고 있다. 원주와 강릉, 전주 등 전국 곳곳에서 관아와 읍성, 객사, 동헌 등이 복원 중이다. 화성행궁과 남한산성 행궁도 복원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4, 5년 전만 해도 행궁, 객사, 동헌 같은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전통 건물의 복원사업과 더불어 최근 한국인들 사이에서 전통의 의미에 대한 복원 운동도 함께 일어나는 것 같다. 놀라운 일이다. 이런 변화는 한국이 경제대국뿐 아니라 문화대국으로 가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유럽 주요 국가들이 경제적 과학적 발전과 더불어 문화에 대한 인식을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잃어버린 유산을 되찾기 위해 이만큼 엄청난 투자와 노력을 기울인 국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의 이런 예기치 못한 놀라운 발전에 박수를 보낸다.

피터 바돌로뮤 왕립아시아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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