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현진권]차명재산만 5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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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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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권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현진권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확인된 차명재산 규모가 약 4조7000억 원이라고 한다. 그동안 차명재산에 대한 비판은 많았지만 구체적인 규모를 알 수 없어 감성적 비판과 자발적 순응을 요구하는 해결책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이 규모는 국세청의 감시 대상자를 바탕으로 하였으므로 실제 차명재산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비록 일부이지만 구체적 수치를 처음으로 제시한 만큼 이제 감성적인 비판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정책 방향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탈세 악용돼 공정사회 가치 훼손

탈세와 재산 도피 등에 활용되는 차명은 분명 공정사회의 가치를 해치므로 근절되어야 한다. 더 효과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우선 차명행위를 경제적 관점에서 설명해야 한다. 차명행위를 단순히 비도덕적인 행위가 아닌 합리적인 경제행위로 설명할 수 있어야 이에 따른 해결책도 현실성을 가진다. 차명행위는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행위다. 누구든지 자신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차명과 본인 명의라는 두 가지 대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고민을 할 것이다. 이때 선택하는 기준은 차명을 함으로써 얻게 되는 기대이득과 발각되었을 때의 기대손실을 비교해 이루어진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약 5조 원에 육박하는 차명재산은 이러한 기준의 메커니즘이 작동한 결과일 뿐이다. 즉 차명행위에 따른 이득은 큰 반면 차명행위 적발에 따른 기대손실은 상대적으로 낮은 측면이 있다.

차명행위는 당사자 간의 은밀한 거래이므로 정부에서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국세청에서 발표한 수치는 실제 차명재산의 극히 일부일 가능성이 충분하다. 당사자 간에 아무런 문제없이 거래가 지속되면 정부에서 차명을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 물론 가족 중에서 소득이 없는 어린 자녀를 차명했을 때는 상대적으로 쉽게 정부에서 증여세 등으로 규제할 수 있지만 제3자를 통하면 정부가 파악하기 매우 어렵다.

가족을 제외한 타인의 차명은 실소유자 입장에서도 엄청난 위험을 수반한다. 본인의 재산권을 본인 이름이 아닌 타인 이름으로 법제화하는 행위는 선진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우리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재산권의 법적 근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진국과는 달리 법적 근거보다 인정을 우선하는 우리 정서에 맞추어 재산권도 당사자 간의 적당한 거래를 통해 얼마든지 명목과 실질 간의 재산권으로 이원화가 가능한 것이다. 이런 특이한 현상에는 사법부의 판례도 한몫했다. 부동산의 경우 부동산실명제에 따라 명의신탁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소유자의 재산권을 인정하는 사법부의 판례가 많다. 명의신탁을 해서 당사자 간에 분쟁이 일어나더라도 실질 소유권을 인정받을 수 있으면 그만큼 차명에 따른 기대손실은 줄어들게 된다. 결국 차명에 따른 기대손실보다는 기대이득이 크므로 차명행위는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행위가 된다. 차명을 억제하는 기본 방향은 기대손실을 기대이득보다 크게 하는 것이다.

차명행위 땐 득보다 실 많게

경제학에서는 법을 제도로 본다. 차명을 포함한 사회 구성원의 행위는 제도에 따라 영향을 받으므로 제도 디자인이 매우 중요하다. 만약 차명재산을 모두 실소유자가 아닌 명의 대여자의 재산권으로 인정한다면 차명행위가 지금처럼 일어날 수 있을까. 실소유자 입장에서는 차명으로 인한 기대손실이 지금보다 엄청나게 증가하므로 차명하지 않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물론 법이 고려해야 하는 여러 가지 원칙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차명 거래자의 과거 행위에 대한 법적 해석 및 판단도 중요하겠지만 사회 구성원들의 미래 차명행위를 차단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법을 활용하는 탄력적인 사고 전환도 이 시점에서 생각해볼 만하다.

현진권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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