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주펑]남북러 가스관사업과 한반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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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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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지난달 24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시베리아의 울란우데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다. 이번 회담의 가장 큰 뉴스는 러시아에서 북한을 거쳐 한국에 이르는 천연가스관 건설 계획에 북한이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이다. 가스관 건설이 최종 확정된다면 러시아는 안정적인 천연가스 수요처 확보는 물론 구소련 해체 후 약화된 동아시아 내 영향력을 재건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모스크바는 이미 7년 전 평양에 북한을 통과하는 가스관 건설을 제의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계속 거절해왔다. 한국이 극동지역에서 중국에 이어 제2의 시베리아 천연가스 수요처가 되면 북한으로선 러시아라는 냉전시기의 혈맹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한국행 가스관이 갖고 있는 ‘지연(地緣)정치’의 함의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이 왜 이번에는 가스관 건설에 동의했을까. 이는 그가 내놓을 수 있는 패가 몇 개 남지 않았음을 뜻한다. 한국 미국 일본이 대북 경제제재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의 경제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중국의 대북 경제원조는 식량 부족을 국부적으로 완화시켜 줄 뿐이다. 따라서 김 위원장으로선 한국행 가스관에서 생기는 통행료의 유혹을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가스관 건설의 대가로 러시아가 생각하는 금액(연간 1억 달러)보다 5배나 많은 통행료를 요구한 것도 이 같은 정황을 반영한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 같은 터무니없는 요구를 미리 간파한 듯하다. 러시아 언론은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구소련 시절 북한이 연체한 100억 달러의 채무 상환을 요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며 이익을 취하려고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는 그 같은 시도가 막다른 벽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힘겨루기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가스관의 북한 통과를 최종 합의한다면 이는 북한을 둘러싼 동북아 정세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사건이 될 것이다. 한국행 가스관이 건설되면 북한은 자연히 러시아 극동지역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공급 네트워크에 편입된다. 북한이 당장 천연가스의 주요 소비처가 될 수는 없겠지만 가스관 개통 이후 러시아는 후속 조치로 한국으로 통하는 송유관 건설을 제안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을 경유해 시베리아와 한국을 잇는 철도노선도 생각해볼 수 있다. 가스관이 북한의 빗장을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해 보니 한국 내에서 이번 가스관 건설에 회의적인 견해가 적지 않은 듯했다. 일각에서는 1억 달러의 가스관 통행료가 북한 군부로 흘러들어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북한이 가스관을 무기로 한국을 협박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물론 가스관 통행료가 북한의 군비 확장에 이용될 수도 있다. 하지만 1억 달러는 결국 북한이 경제적으로 생존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고민하게 만드는 내부적인 유인책이 될 것이다. 또 북한이 가스관을 이용해 한국을 위협한다면 아마 러시아가 먼저 반대할 것이다. 가스관이 폐쇄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쪽은 러시아이기 때문이다. 나는 북한이 러시아와 반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북한이 러시아의 뜻을 거스른다면 북한이 감당해야 할 대가는 미국과 반목하며 감수한 손해보다 더 클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이명박 정부가 진정 대북정책의 융통성을 제고하고 싶다면 북한과 러시아 간 천연가스관 노선 협의를 두 팔 벌려 적극 환영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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