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명희]현충원에 점화될 ‘꺼지지 않는 불꽃’

  • Array
  • 입력 2011년 8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 한국현대사학회 교과서위원장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 한국현대사학회 교과서위원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과 함께 3월 15일 오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마지막 생존용사였던 프랭크 버클스 씨의 하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았다. 그리고 이날 백악관과 미국 전역의 공공기관에는 조기가 게양되었다. 필자는 동아일보 3월 17일자에 실린 이 기사를 읽고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 우리는 공산세력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한 6·25전쟁의 위대한 영웅들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있으며 그들 가운데 현재 누가 살아 있고, 또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더욱 모르기 때문이다.

기념물 통해 국가의 정통성 형상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의 정통성을 바로 세워 이를 위해 헌신한 영웅들을 기리고 받들어야 한다. 미국의 정치학자 C E 메리엄은 정통성 확립의 방법으로 크레덴다(Credenda)와 미란다(Miranda)를 제시하였다. 전자가 ‘자유’와 같은 신조를 이성에 호소함으로써 복종의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국가(國歌)나 국기(國旗) 등을 활용한 의례를 통해 정서에 호소함으로써 국가에 대한 충성을 유발하는 행위다. 전자가 주로 교육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면, 후자는 집단적 의례를 통해 이루어진다.

국립서울현충원은 6·25전쟁의 전사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지키거나 발전에 기여한 애국지사와 순국선열 그리고 국가유공자가 잠들어 있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성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 국가보훈처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의 애국정신을 본받고 넋을 기리기 위해 영원히 꺼지지 않는 ‘호국보훈의 불꽃’을 내년 현충일에 점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국가의 정통성은 의례와 기념물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일반적으로 많은 다른 나라에서는 건국기념절 의식을 대대적으로 행하고, 화폐에도 건국과 나라 발전에 기여한 영웅들을 새겨 일상 속에서 기념하도록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건국기념절 행사도 없으며, 역사 교과서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이라는 용어조차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나라를 세워 지키고 발전시킨 영웅이 누구인지는 더 모른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을 대표하는 인물이나 사건조차도 없이 추상적으로 현대사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보훈처가 호국영령의 애국정신을 국민의 가슴속에 새기고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호국보훈의 불꽃’을 항시 피워 보호하겠다고 하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 먼저 감사를 드리고 싶다. 동시에 이 호국보훈의 불꽃이 과연 국민의 마음속에 어떻게 기억될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면 반드시 보충해야 할 것이 있다는 생각이 가슴을 파고든다.

대한민국 건국 영웅 가르쳐야

국기와 국가처럼 구체적인 영웅이나 사건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기억 속에는 대한민국의 건국, 수호, 발전과 관련된 영웅들이 없다. 아니 없는 것이 아니라 역사 교육을 통해 공인된 기억이 없을 뿐이다. 이러한 문제 탓에 역사 교육을 둘러싸고 국민적 갈등이 되풀이되고 있다.

조만간 2011년 개정 역사교육과정이 고시될 것이다. 이어서 역사 교과서 집필에 준거가 되는 ‘집필기준’도 만들어질 것이다. 초등학교 역사는 인물사와 사건사를 중심으로 가르치도록 하고 있다. 그러므로 초등학교의 집필기준에서는 현대사의 인물과 사건들도 제시될 것이다. 정부와 역사학계는 역사교육을 통해 국민 가운데 대한민국의 영웅과 사건에 대한 공인된 기억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호국보훈의 불꽃’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 한국현대사학회 교과서위원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