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윤종]장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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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3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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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 기자
유윤종 기자
한밤, 헤드폰을 끼고 앰프의 볼륨을 올린다. “인간은 커다란 고통 속에 있도다(Der Mensch liegt in grosser Pein)….” 말러의 가곡 ‘원광(原光)’이 귓전을 울린다. 모처럼 안락한 시간이지만 하루 동안의 자잘한 과오와 우행(愚行), 사소한 득실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인간은 괴로움을 통해 비로소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인간이 어려운 시간에도 당당할 수 있다는 점은 누구에게나 한결같은 위안이다. 최근 읽은 몇 페이지의 글에서 벼락같은 힘을 얻는다. 세상의 이치를 주어와 서술어, 수식어 몇 개로 드러내는 글의 힘, 상징의 힘. 바로 문학의 힘이다.

‘꿈인지 생시인지/사람들이 정치를 하며 살고 있다/경제를 하며 살고 있다/사회를 하며 살고 있다//꿈인지 생시인지/나도 베란다에서/화분에 물을 주고 있다’(‘물 위에 씌어진 3’)

이 시를 쓴 최승자 시인은 최근 출간한 시집 ‘물 위에 씌어진’을 정신과 병동에서 썼다. 단 하나 남은 혈육인 외삼촌만이 그를 면회할 수 있다. 시인은 시집의 서문에 쓴 대로(‘하루 낮에도 천국과 지옥을 오락가락하는 게 시인이 아니더냐’) 갈피가 잡히지 않는 세계를 넘나든다. 극심한 불면증, 갑작스러운 환청과 환각이 그의 정신을 착취해 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체중은 어느새 34kg까지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의 새 시집 ‘물 위에 씌어진’에는 고통과 고독, 생사까지도 깔고 앉은 정신의 강력함이 있다. ‘슬펐으나 기뻤으나/그래도 할 일이 없어 오른 산(山)/오른 발을 동에 두고 왼 발은 서에 두고/굽어 보고 굽어 봐도/슬펐으나 기뻤으나의 그림자들일 뿐/세상은 간 곳 없고 부풀어오르는 먼지뿐,(‘슬펐으나 기뻤으나’)이라고 말하는 그의 인생관과 존재관에는, 다윈 식으로 말하면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또 하나의 장엄한 정신이 있다. 최승자 시인의 시집이 도착한 그날(7월 14일) 본보 지면에 실린 최인호 작가의 인터뷰를 읽는다. 항암 치료의 후유증으로 손톱이 빠지자 손가락에 골무를 끼워가며 작가는 장편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완성했다.

작가는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병(病)의 동굴에 갇혀 있지 말고 푸른 바다 위에 떠 있어라!” 단지 병뿐일까. 일상의 우울이나 무기력의 동굴에 갇혀 있을 이들에게도 두려움 없는 그의 정신은 환한 감동을 준다. 한 독자는 인터뷰를 읽고 종일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최 작가님이 빠삐용처럼 우뚝 일어나시기를 빌었습니다.”

인터뷰 끝에서 작가는 “내년 만우절에 기자회견을 열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암에 대해 껄껄 웃으며 소리치겠다고 했다. “뻥이야!” 그 폭소는 장엄하다. 모차르트가 삶의 마지막을 예감하는 속에서도 환한 밝음으로 써낸 마지막 교향곡 ‘주피터’의 마지막 C장조 화음만큼이나 그러하다. 생사를 앞에 놓고 이렇게 장엄하고 존엄할진대, 일상의 과오와 우행이 문제이겠는가. 두려움이 무슨 필요겠는가.

두 권의 책, 시집 ‘물 위에 씌어진’과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이번 휴가 트렁크에 넣으려 한다. 모처럼 머리를 쉬는 시간,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드는 텍스트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쉬는 시간이기에 비로소, 인간의 운명적인 괴로움과 극복에 대해 거리를 두고 음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윤종 문화부장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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