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50년 된 국정원, 안보 역할과 공작체계 재구축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27일 03시 00분


국가정보원이 다음 달 10일로 창설 50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으로 개명을 거듭했고, 원훈(院訓)도 몇 차례 바뀌었다. 그만큼 시대와 정권에 따라 부침이 심했고 역할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얘기다. 국정원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첨병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치 사찰과 공작, 인권 탄압으로 독재정권의 하수기관 역할을 한 전철도 있다.

정보는 국가운영의 생명이다. 적시에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명석한 국가 지도자라도 올바른 정책 판단을 하거나 외부 위협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미국이 2001년 9·11테러를 막지 못한 것이나, 우리가 작년에 북한의 천안함, 연평도 도발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도 결국 정보기관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이번 김정일의 중국 방문 초기에 정일인지 정은인지 헷갈린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국가정보학회가 어제 국정원 창설 50주년을 맞아 개최한 ‘정보환경 변화와 국가정보 발전 전략’ 학술회의는 국정원이 나아갈 방향을 다각도로 조망했다. 전문가들은 북의 도발 징후를 조기에 포착해 대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북의 변화를 촉진하면서 통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대북(對北) 비밀공작과 심리전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국정원의 대북·대공 인력과 조직을 축소하고 기능을 위축시킨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당시 국정원이 대북협상 창구를 맡아 그 책임자가 김정일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기념석을 나르는 심부름꾼을 했으니 북이 우리 정보기관을 얼마나 우습게 봤겠는가. 국정원은 기본적으로 스파이 기관이다. 정부 정책의 홍보기관이나 메신저가 돼서는 안 된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해 이스라엘의 모사드, 영국의 MI6에서는 전문가가 아니면 지휘부에 앉을 수 없다. 스파이 기관의 장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겠다고 지역구를 기웃거리는 행태도 한국 말고는 없다. 대통령의 5년 임기에 몇 번이나 수장을 바꾸는 인사도 잘못됐다.

최근 농협 전산망 마비사태에서 보듯 북의 사이버테러는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다. 국제테러조직의 무차별 테러나 산업스파이도 경계해야 한다. 국정원의 직무 범위가 그만큼 넓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국정원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법적 제도적 뒷받침을 해줄 필요가 있다.

정보기관은 권력과 너무 가까워도 안 되고 멀어서도 안 된다. 정권이 아니라 국익에 헌신하는 게 국정원의 모토가 돼야 한다. 국정원이 국내 사찰과 도청, 정치 개입 같은 굴절된 과거와 단절하고 국가 최고 정보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재정립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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