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정래]차별, 권위, 경쟁 없는 교육의 허상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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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래 부산교대 교수·교육학
김정래 부산교대 교수·교육학
얼마 전 서울교육청 곽노현 교육감은 사교육을 억제한다는 명분 아래 내년부터 중고등학생들이 치르는 수학·과학경시대회를 폐지하기로 했다고 한다. 명분은 이러한 경시대회를 통하여 아이들의 이른바 ‘스펙 쌓기’를 빌미로 학원이 성행하고 경쟁심이 조장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별 문제가 안 될 것처럼 보이는 이 조치에 우려를 표명하는 이유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교육은 근거도 뚜렷하지 않은 3불(不)정책에 얽매여 교육경쟁력 저하의 근본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3불정책의 근거는 희박하다. 과거 예비고사의 대비개념인 본고사는 실상 대학의 선발권을 봉쇄하는 정책이고, 고교등급제는 평준화의 실패를 은폐하려는 고육책에 불과하고, 기여입학제를 허용하지 않으려면 대학을 등록금과 각종 규제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3불정책을 통하여 ‘공정한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이 이제는 ‘3무(無)’ 교육을 조장하고 있다.

작년 지방선거로 등장한 좌파 교육감들이 주도하는 ‘3무 교육’이란 교육의 권위 없애기, 차별 없애기, 경쟁 없애기를 말한다. 권위 없애기는 학생인권조례 제정과 체벌금지조치 강행으로 인하여 현장 교사들의 권위가 여지없이 구겨지는 상황을 초래했다. 학생인권조례와 체벌금지조치의 명분은 누가 보아도 옳은 듯하지만, 교과를 가르치고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들의 권위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을 자연 상태의 사회계약 당사자로 잘못 치환한 부당한 문서이다. 학교는 사회계약에 나오는 자연 상태도 아니고, 학생은 계약 당사자가 아니다. 학생은 선생님에게 배우러 온 존재이고, 학교는 ‘제도’이다.

차별 없애기는 좌파 교육감들이 강행한 무상급식에서 잘 나타난다. ‘누구나 생존할 권리를 가진다’는 보편적 명제에서 ‘누구나 국가로부터 무상급식을 받아야 한다’는 부당한 명제를 도출하는 오류를 ‘차별 없는 교육, 차별 없는 사회’라는 슬로건으로 감싸며 일반인과 학부모를 현혹시킨다. 게다가 교육에서 차별은 모두 악덕(惡德)이 아니다. 성차별, 지역차별, 인종차별, 계층차별은 경계해야 하지만, 개인 간의 능력과 노력, 자질에서 비롯되는 차별은 존중하여야 한다. 식성이 제각각인 아이들에게 똑같은 메뉴를 제공하는 것이 잘못인 것같이 모든 아이들의 개성과 능력, 노력을 차별적으로 대하지 않으면 교육 자체의 존재 근거가 없다. 오히려 차별은 교육경쟁력 제고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

경쟁 없애기는 각종 지필고사 금지라는 그릇된 관행으로 이미 널리 퍼져 있다. 대입 전형의 본고사 금지는 물론 설립도 쉽지 않은 특수목적 학교의 그나마 인가된 목적에 합당한 선발을 못하게 하는 당국의 규제도 경쟁력을 갉아 먹는 근본 요인 중 하나이다. 현 정부 들어서 ‘선택’을 중시한다고 하면서 도입한 ‘고교선택제’는 일부 학생들의 지원에 따른 한정된 추첨배정으로 기존의 전원 추첨보다 더 개악시킨 결과를 가져왔다. 경쟁 없애기는 좌파 교육감들만의 ‘작품’이 아니다. 경쟁을 죄악시하는 과거와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이유야 어찌 되었건 좌파의 경쟁 없애기 노선에 적극 동조하는 꼴이다.

이번 서울교육청의 각종 경시대회 폐지는 ‘경쟁 없는 교육’에서 그나마 특기 보유 학생들의 성취 동기와 경쟁 의욕마저 앗아가는 결정판인 듯하다. 순진한 마음에서 혹자는 그게 왜 나쁘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좌파들의 빛바랜 ‘계급 없는 사회’ 실현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니 이제는 이를 ‘권위 없애기’, ‘차별 없애기’, ‘경쟁 없애기’로 교묘하게 치환했다는 것이 합당한 답이 될 것이다.

김정래 부산교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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