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로저 코언]작아진 메르켈 獨총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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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통독 9년째이던) 1998년 나는 프랑스에서 독일 베를린으로 이주해 살고 있었는데 존경스러운 독일의 모습을 여러 번 발견한 적이 있다. 다소 어지러울 정도로 개방적이었던 베를린은 마치 금박을 입힌 듯 완벽했던 파리가 주던 답답함을 해소해 주었다. 새로운 독일은 내게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겨 주었다. 무엇보다 나는 잿더미 국가에서 통일된 조국을 만들어낸 그들의 능력에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독일은 주춤주춤하는 게걸음으로 확실한 목표를 찾지 못하는 국가가 되었다. 우선 2010년 그리스 국가 부채 위기에 대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주저했던 대응이 그렇다. 유로의 미래가 흔들리고 있었던 그때, 그는 유럽의 운명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당시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은 채무 불이행 직전까지 갔었다. 독일 대중지 ‘빌트’ 타블로이드판은 그리스를 향해 “섬들을 팔아 빚을 갚으라”며 독일 내 반(反)그리스 정서를 대변했다. 유럽 내에서 독일을 향한 분노는 거세졌다.

메르켈은 (유럽의 운명 대신) 뒤셀도르프에 눈길을 돌렸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2010년 5월 독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지역의 선거에 눈길을 준 것이다(지난해 5월 9일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의회 선거를 말한다. 당시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여당인 기민련-자민당 연정은 주정부 재집권에 실패했다·역자 주) 하지만 그들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1년 후, 리비아와 일본에서도 위기가 발생했다. 세계는 서둘러 메르켈을 찾았다. 이번에도 메르켈은 아랍 민주화의 미래나 후쿠시마의 운명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3월 27일 슈투트가르트, 더 정확히 말하면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총선만 생각했다.

메르켈은 독일의 핵심 동맹인 미국 프랑스와 함께하기를 거부했다. 벵가지에서의 민간인 학살을 막을 수 있는 리비아에 대한 군사 개입에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원전 정책에서도 일본에 자극되어 U턴을 선택했다. 지금까지만 독일 내 7곳의 원전을 폐쇄했다. 국가 전력 공급의 4분의 1을 책임질 독일의 원전 수명 연장에 강경했던 노선도 수정하려 하고 있다. 독일 산업무역위원장 한스 하인리히 드리프트만은 로이터에 “(독일 정치가) 패닉 상태에 빠져 그릇된 조언자들만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메르켈은 58년간이나 여당의 표밭이었던 바덴뷔르템베르크에서 또 패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동맹국들이 가졌던) 그에 대한 신뢰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이 유럽식 이상주의를 잃었다는 것은 지난 몇 년간 내가 독일에서 보아온 것 중 가장 충격적인 변화다. 메르켈은 독일이 과거 유럽연합(EU)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처럼 유로와 EU 시장이 활력을 찾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유럽을 이끌어야 한다. 리비아에 대한 불개입 정책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고 동맹국들을 다시 독일의 품 안으로 데려와야 한다. 원전과 관련해서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유럽 내 가장 큰 경제국가인 독일은 가까운 시일 내에 원자력발전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2010년에 옳았던 일이 2011년에는 올바르지 않을 수도 있다. 재생 가능 에너지는 틀림없이 필요한 것이지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 내가 독일에 기대하는 것은 1945년 이후 독일이 가졌던 덕목들이다. 그런데 그것들이 사라져 버렸다. 과연 메르켈이 회복할 수 있을까?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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