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노태우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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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8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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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노태우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정치권의 막전막후(幕前幕後)를 담은 내용은 지금의 정치권에도 파장을 미칠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김영삼(YS) 정부 시절 비자금 사건과 5·18특별법 시행으로 수감생활을 하면서 회고록 준비에 들어갔다. 재임 시절 소련 중국 등 공산권 국가와 수교를 한 ‘북방외교’의 전말과 함께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는 내용의 6·29선언과 3당 합당을 비롯한 정치적 격변기의 이면을 담아낼 것으로 알려졌다. 손주환 당시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등이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 집필을 도왔다. 노 전 대통령은 와병 상태이지만 생전에 책을 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전언이다.

노 전 대통령 때 정치권은 지각 변동을 겪었다. 1987년 13대 대통령선거 때 공약이었던 중간평가 시행 여부를 놓고 여야 간 물밑 협상이 치열했고, 중간평가가 유보되는 과정에서 구구한 억측이 난무했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1992년 14대 대선 때까지 정치권은 요동쳤다. 당시 야당 리더였던 YS, 김대중(DJ) 씨가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통해 당시 상황을 설명했지만 ‘2%’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정치권에서 ‘노태우 회고록’이 새삼 주목을 끄는 이유이다.

일부 대선주자 캠프는 벌써 회고록 초고를 입수해 내용 검토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정치권의 ‘금기’인 비자금 기록이 담긴 ‘판도라 상자’가 열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측 일각에선 회고록에 YS와 관련한 언급이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YS 집권 후 교도소에 간 노 전 대통령으로선 감정의 앙금이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YS와 관련된 비자금 대목이 나온다면 2007년 당내 대선후보 경선 때 이명박 후보를 밀었고 지금도 박 전 대표에게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은 YS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노 정권 시절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 전 정무장관은 2005년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YS가 3당 합당을 전후해 40억여 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YS 측은 “노 전 대통령에게 돈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정면 반박했다. YS 측은 “노 전 대통령 회고록에 무슨 내용이 담기든 관심 없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DJ 관련 ‘20억+알파’설도 풀어야 할 숙제다. DJ는 자서전에서 “14대 대선 즈음에 노 대통령의 격려금을 뿌리치기 어려워 받은 적이 있었지만 그 돈은 받아서는 안 될 돈이었다”고 20억 원 수수설은 인정했다. 하지만 여권 주변에선 “받은 돈은 20억 원이 넘을 것”이라는 풍문이 여전히 떠돌고 있다.

지난해 말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회고록 ‘결정의 순간들(Decision Points)’을 출간하면서 재임 시절 몇 가지 과오를 솔직히 인정했다. 아버지 부시의 정적(政敵)이었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 책은 (민주당원인) 내가 왜 공화당원인 부시 전 대통령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우리나라의 정치 풍토에서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나와도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이 주고받는 정도의 덕담(德談)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자칫 정치공방의 불씨로 번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들이 국내 정치와 외교의 비화를 정확하게 정리해 놓으면 역사의 기록과 정치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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