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태원]정적에게도 紳士道잃지 않는 美정치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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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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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워싱턴 특파원
하태원 워싱턴 특파원
15일 오후 미국 백악관 이스트룸. 세계 각국 정상들이 미국을 방문할 때 공동기자회견을 하는 이곳에서 자유의 메달 수여식이 열렸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 시절인 1945년 처음 만들어진 이 훈장은 민간인으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광으로 여겨진다. 올해 수상자 15명 중 가장 눈길을 끈 사람은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87)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듯 지팡이를 손에 쥔 채 해병대 장병의 부축을 받고 시상대에 선 부시 전 대통령의 얼굴에는 감격에 겨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 상은 그가 41대 대통령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거의 70년에 걸쳐 이뤄진 봉사에 대한 경의 표시”라며 “그의 인생은 공공에 대한 책임과 국가에 대한 기여가 얼마나 고귀한 소명인지를 보여준 모범”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시 전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 조종사로 참전해 목숨을 잃을 뻔했던 일, 냉전시절 중앙정보국(CIA) 소속으로 중국 베이징(北京)에 근무했던 경험, 대통령을 지내면서 냉전을 종식하고 핵무기를 감축했던 사실들을 상기시켰다.

노(老)정치인도 과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지 눈가에 고인 눈물을 여러 차례 닦아 냈다. 그런 전 대통령에게 애정 어린 눈길을 건넨 오바마 대통령은 “그는 겸손함과 어떤 순간에도 품위를 잃지 않는 기품을 통해 미국정신의 정수를 대외에 과시했다”며 “이 시대의 진정한 신사”라고 말했다. 단하에 나란히 앉은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는 백발의 바버라 부시 여사의 손을 꼭 잡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상원의원 시절 역대 공화당 정부의 외교정책 전반에 대해 날선 비판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부시 전 대통령의 외교안보 분야 공적을 치하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의원 시절 개인적 소신과 국가원수로서 과거 정부의 공과를 총론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구분되어야 함을 보여준 것이다.

이날 시상식은 미국 정치가 정치적 반대파들에 대한 정중함과 신사도를 잃지 않았음을 입증해주는 한 장면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국정연설에서도 공화당 소속인 존 베이너 하원의장을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추어올렸다.

행사가 끝날 때 오바마 대통령은 “내가 왜 이날을 좋아하는지 아시겠죠”라고 말했다. 상을 줘서 기분이 좋고 국민을 하나로 통합시키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정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돼서 흡족했다는 뜻으로 들렸다. 바로 ‘시스템’이다. 정파를 초월한 66년 전통의 자유의 메달 수여는 분열의 정치를 치유하는 청량제로 작용하는 미국식 시스템 아닐까.

하태원 워싱턴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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