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장강명]GM 압박하던 산은의 초라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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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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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처음 부임하자마자 산업은행에 관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산은과 GM대우자동차의 관계에 대한 기사에는 항상 소문과 의혹이 따라다녔고, 이는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됐습니다. 직원들이 진짜로 걱정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GM대우차가 산은에서 빌린 1조1262억 원을 이달에 전부 다 갚겠다고 밝힌 1일, 제이 쿠니 GM대우차 홍보담당 부사장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 중 일부다. 그는 “오늘은 새로운 날”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세계 경제위기와 모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의 경영난으로 GM대우차가 지난해 초 유동성 위기를 겪었을 때부터 산은은 1년 이상 GM대우차를 압박했다. 지난해 프리츠 헨더슨 당시 GM 최고경영자가 지원을 요청하러 방한할 때에는 민유성 산업은행장이 “우리 요구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출금 회수에 나서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책은행으로서, 또 GM대우차의 2대 주주로서 산은이 ‘GM이 철수하더라도 GM대우차가 독자 생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나선 것을 탓하기는 어렵다. 마침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에서 철수한 직후였다. 문제는 그 방법이었다. 산은의 요구사항에 대해 자동차업계에서는 “자동차산업과 GM을 너무 모른다”는 비판이 나왔다. 경기에 민감한 자동차회사에 몇 년간 일정 수준의 물량을 보장하라는 것이나, 세계 각지의 지역본부가 협업해 신차를 개발하는 GM에 기술 소유권을 달라고 한 요구 등이 그렇다.

산은은 상대의 능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산은이 “요구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자 GM은 4900여억 원을 조달해 GM대우차의 신주권을 모두 매수하며 “우리가 한국을 떠날 생각이라면 이러겠느냐”고 반박했다. 결과적으로 산은이 가진 GM대우차의 지분만 28%에서 17%로 떨어졌고, 이사회에 파견할 수 있는 이사 수도 3명에서 1명으로 줄었다. 이제 산은은 채권자라는 지위를 잃어버렸고, 한국이 GM대우차의 경영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금융위기 전보다 오히려 더 감소했다. 큰소리치다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아무리 세계화시대라도 국가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업의 운명을 자본 논리에만 따르는 외국기업에 전적으로 맡겨둘 수는 없다. ‘정답’은 못 내더라도 최소한의 대비책은 마련해야 할 텐데, GM대우차와 관련해 뭘 얻어내기는커녕 기왕에 갖고 있던 지렛대조차 줄여버린 산은의 대처는 답답해 보이기만 하다.

장강명 산업부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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