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헌진]연평도의 진실, 언론은 외면하지만 중국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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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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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이 먼저 쏘지 않았느냐. 왜 자꾸 도발하나.”

중국 베이징에 있는 한 한국 회사 지사장은 최근 중국 직원들의 이런 질문에 속이 상했다고 전했다. 기자 역시 택시운전사와 사무실 여직원에게 비슷한 질문을 받으면서 같은 심정이었다. 특히 한국특파원을 지냈으며 평소 친한파로 생각해왔던 중국인 기자에게서까지 비슷한 질문을 받았을 때는 암담했다. 실제로 관영언론 환추(環球)시보의 최근 여론조사에는 한반도 위기 원인을 북한(9%)보다 미국(55.6%)과 남한(10.3%)으로 꼽았다.

이유는 언론 때문이다. 중국 언론은 이번 북한의 연평도 도발을 보도하면서 “공격을 받아 반격했다” “공격하면 반드시 보복하겠다”는 북한 주장을 먼저 앞세운 뒤 남한의 격렬한 반발과 들끓는 여론, 한미연합훈련 등을 나중에 전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실 확인에 판단이 필요하다”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어떠한 상황도 반대한다”는 등 중국 외교부의 논평을 덧붙인다. ‘발생 원인은 논란이지만 적어도 현 시점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쪽은 한국과 미국’이라는 식의 보도 태도다.

공산당 체제하의 중국 언론은 정부 통제를 받는다. 특히 민감한 사안에는 중앙선전부의 보도지침이 있다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다. 하지만 언론이 논조를 바꾸지 않는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최근 중국 주요 언론 수십 곳과 한반도 전문가 수십 명에게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설명한 중국어 자료를 배포했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조선족 동포를 빼고 대부분이 한국어를 모르기 때문에 자국 매체와 동아일보 등 한국 매체의 중국어 뉴스 서비스, 영어 뉴스 등으로 주로 한국의 입장을 접한다. 이런 현실 속에 한국 정부의 중국어 1차 자료가 주는 의미는 크다. 실제 올해 초부터 혐한(嫌韓) 기사를 게재한 중국 언론에 대해 주중 한국대사관이 적극 해명하자 혐한 기사는 눈에 띄게 줄었다.

안타깝게도 북한의 이번 도발과 관련해 중국 언론의 논조 변화는 거의 없다. 다만 최근 중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이 이런 기사에서 소리 높여 주장했던 ‘한국이 문제’라는 식의 논평은 줄고 있다. 언론은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지만 전문가를 인용하는 횟수는 줄었다. 또 중국 정부의 ‘6자회담 대표 긴급협의 제안’에 대해서도 많은 학자가 실효성에 의문을 던졌다. 다소 낯선 풍경이었다.

물론 이런 변화가 모두 ‘맞춤식 홍보’ 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작은 노력이 결국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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