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승헌]與野다투는 새 소상공인들 피마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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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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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유통산업발전법과 대·중소기업상생협력법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아 달라.” 신근식 전국상인연합회 대기업슈퍼마켓(SSM)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소상공인대표들은 2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권을 맹비난했다. 25일 국회에서 유통법 처리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소상공인들은 “동시처리가 최상이긴 하지만 지금은 그걸 요구할 때가 아니다. 급한 대로 유통법만이라도 통과시켜야 한다”며 “동시처리를 주장하다 법안 통과가 지연되면 골목상권은 SSM에 점령당해 소상공인들은 생존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의 최극렬 공동대표도 “법안 처리가 지연돼 소상공인들이 몰락하면 앞으로 (국회의원이) 시장을 찾아와 인사해도 표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들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던 민주당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민주당이 “상생법이 통상 분쟁을 불러올 수 있다”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발언을 문제 삼아 일괄처리로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초 여야는 유통법을 우선 처리하고 상생법은 12월에 따로 처리하는 것으로 합의한 바 있다. 한나라당 역시 칭찬받을 일을 한 것은 아니다. 정부와 조율을 제대로 못해 장관급인 김 본부장이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추진 중인 유통법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하도록 놔둬 합의 파기의 빌미를 줬다. 입으로는 ‘친서민’을 외치며 ‘조기처리’를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뒷짐만 지고 있었던 셈이다.

물론 SSM 규제 법안이 글로벌 경제논리에 어울리지 않고, 소상공인을 살리는 만능열쇠도 아니다. 19세기 후반 자동차의 등장으로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마구(馬具)업체들의 대응은 SSM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프랑스의 마구업체였던 ‘에르메스’는 가죽가공 기술을 바탕으로 장신구 브랜드로 다시 태어났지만 영국 마구업체들은 차량의 도로 주행을 제한하는 법령을 만들며 버티다 결국 모두 망했다.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의 진입을 강제로 막을 수는 없다. 소상공인들도 상황 변화에 따라 자기변신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자기변신도 생존이 전제된 상황에서 가능한 이야기다. 고사 직전에 내몰려 유통법만이라도 통과시켜 달라는 소상공인들의 요구에도 정치권은 서로에게 책임만 떠넘기고 있다. 정쟁으로 시간을 끌지 말고 우선 법안을 통과시켜 급한 불을 끈 뒤 소상공인들이 스스로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을 찾는 것이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이다.

박승헌 산업부 hpar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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