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수진]‘평화 훼방꾼’ 파문… 민주 지도부의 실망스러운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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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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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해 보자.

우리나라 차기 대통령에 A 씨가 확실시되고 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국내외의 눈길이 쏠리는 가운데 느닷없이 주변국의 중진 정치인 B 씨가 A 씨와의 일화를 거론했다. “1년 전 A 씨를 만났더니 우리나라 국가원수의 외교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더라. ‘평화 훼방꾼’이라고까지 했다.”

B 씨의 발언으로 A 씨는 졸지에 다른 나라 지도자에 대해 뒤에서 험담을 하는 인물이라는 인상을 주게 됐다. 그야말로 날벼락 같은 봉변을 당한 셈이다. 한국 정부는 불쾌감에 “A 씨는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공식 발표한다. 여기서 B 씨가 상식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과연 어떻게 처신할까. 발언 의도야 어떻든 외교적 파문을 일으킨 것에 대해 A 씨와 한국 정부에 사과부터 하지 않을까.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차기 중국 국가주석으로 내정된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이 이명박 정부를 지칭해 ‘한반도 평화 훼방꾼’이라고 표현했다고 주장한 뒤 중국 외교부가 이를 공식 부인하자 “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을 볼 필요가 없다. 달을 봐야지”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가 일으킨 외교적 파문에 대해선 일언반구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도 마찬가지이다.

손 대표는 중국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중국 지도부에 어떻게 비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는 게 사건의 본질”이라며 박 원내대표를 사실상 옹호했다. 취임인사차 예방한 외교통상부 장관에게도 뜬금없이 한중관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훼방꾼 발언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나 설령 사실일지라도 그런 말을 하는 게 적절했는지 등에 대해선 눈을 감았다. 그런 선택에 대해 측근들은 “야당의 선명성과 박 원내대표가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의 정체성과 연결돼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것으로 안다”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두 달 전까지 당 대표였던 정세균 최고위원, 2007년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 최고위원은 침묵을 택했다.

민주당 의원들과 당직자 사이에선 “이번 일은 박 원내대표가 실수했다. 깨끗이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않지만 당 지도부가 택한 대응은 달랐다.

민주당의 최대 화두는 ‘정권 창출’이다. 그러나 국내 정치에서 반사이익을 취하기 위해 중국 지도자를 함부로 들먹이고, 중국의 공식 부인에도 불구하고 궁색한 논리로 버티는 것이 과연 책임 있는 수권정당의 태도인가. 중국이 한국 야당의 수준을 어떻게 볼지 생각해 보라.

조수진 정치부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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