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헌진]中식량난 해결 현장서 김정일은 뭘 느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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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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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11시를 조금 넘긴 시간. 중국 지린(吉林) 성 창춘(長春) 시 외곽에 자리 잡은 제9회 창춘농업박람회장의 20개 출입문이 마침내 열렸다. 106만 m²의 넓은 땅에 농작물과 농기계, 농가공상품 등을 구역별로 전시하는 박람회장은 평소 오전 8시 30분에 개관해왔다. 하지만 이날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일행이 먼저 참관한 뒤 문을 열었다. 사실 이 박람회는 하루 전인 27일 폐막할 예정이었지만 폐막 직전 돌연 이틀을 더 연장했다. 김 위원장 일행의 참관을 위해 중국 측이 특별 배려한 것이다.

한 목격자가 말해준 대로 김 위원장과 3남 김정은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불과 40∼50분 전 지나간 길을 따라 걸어봤다. 농작물 전시구역이었다. 각종 넝쿨식물로 사각형 또는 아치형 터널을 만들었다. 뱀처럼 길게 생긴 ‘사두오이’ 같은 식용 오이류와 호박류 등이 머리 위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이 식물터널 양옆에는 개구리가 헤엄치는 논에서 자라는 온갖 벼 품종과 함께 사람 키보다 훨씬 큰 옥수수와 해바라기, 기네스북에서만 봤던 엄청난 크기의 호박과 수박이 자라는 밭, 땅을 완전히 뒤덮은 고구마 잎사귀 등이 펼쳐졌다. 거듭된 종자개량으로 단위면적당 생산성과 맛을 높이고 병충해에도 강한 각종 농작물이 가랑비에 젖고 있었다.

문득 지난해 6월 본 랴오닝(遼寧) 성의 북-중 접경지역인 단둥(丹東) 황금평이 떠올랐다. 이름에서 연상되듯 황금평은 압록강 하구의 넓은 곡창지대로 철조망 하나로 북-중이 갈리는 곳이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중국의 옥수수는 마치 어른과 아이처럼 ‘몸집’이 달랐다. 중국 옥수수는 튼튼한 줄기에 잎은 검게 보일 정도로 푸르렀다. 북한 옥수수는 줄기가 가늘고 키가 작았으며 잎이 빈약했다. 종자가 나쁘고 비료나 퇴비 등 영양을 공급받지 못해서다.

중국은 최근 30년간 끊임없는 종자개량과 비료를 개선해 13억 명이라는 거대 인구의 먹는 문제를 일찌감치 해결했다. 그 현장을 보며 굶어 죽는 주민이 속출하는 나라의 철권 통치자와 그 후계자는 무엇을 느꼈을까.

이날 박람회에서 72세의 할머니를 만나 “방금 북한 최고 지도자가 다녀갔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우리도 개혁개방 전만 해도 그들처럼 못살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할머니의 말처럼 북한이 당장 해야 할 일은 고립의 길을 버리는 것이다. 이곳에서 김 위원장이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해봤기를 희망해본다.

―창춘에서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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