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기찬]기술융합시대 中企상생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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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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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이란 느린 속도로 진화하던 생산기업이 낳은 유물이다. 중세시대에 공동 이용이 가능한 토지에 담이나 울타리 같은 경계선을 쳐서 남의 이용을 막고 사유지로 사용했듯이 여러 참여자가 절대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만든 경계이다. 이 속에서 경쟁은 명확하게 정의된 산업계의 테두리에서만 벌어졌다. 오늘날은 사업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생산시대에서 개발시대로 변하기 때문이다. 혁신이란 슘페터의 표현처럼 새로운 결합이며 융합의 결과이다.

우리 사회에도 변화에 걸맞게 닫힌 산업계를 넘어 열린 기업생태계로 재정렬이 요구되고 있다. 최근 수년간 지속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 정책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의 양극화 갈등이 지속되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최근 KT 이석채 회장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닫힌 상생 대신 열린 공동성장이 필요하다고 한 역설은 주목할 만하다. 지금까지의 닫힌 상생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앞으로는 중기벤처와 동반 성장하며,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으면 앱 콘텐츠 사업 기회를 제공해 협력사가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의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약속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상생정책의 방향은 생산 중심의 상생에서 개발 중심의 상생으로, 닫힌 생태계 중심에서 열린 생태계 중심으로의 변신에 늦은 감이 있다. 이미 앱 시장에서 수많은 모바일 벤처가 양산 기회를 놓쳤다. 지금이라도 우리의 상생협력이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한국의 생태계가 창업과 중소벤처기업의 에너지를 확장시키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배경과 과제를 정리해 보자.

첫째, 지금까지와 같은 생산 중심적 상생사고를 벗어나지 않는 한 대기업 중심의 실적 잔치는 피할 수 없다. 생산 중심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분업에 있어서 임금의 이중구조를 배경으로 하므로 중소기업 간 수익성의 양극화는 운명적인 부분이 있다. 연구개발은 대기업이 하고 생산과정의 원가절감을 위해 중소기업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상생협력의 이슈가 생산 중심에서 연구개발로 이행할수록 경제의 외부효과가 커지기 시작한다. 이제 외부성 효과를 만드는 공동 개발과 진화, 기술 융합과 같은 연구개발이 중심이 돼야 한다. 단품이 아닌 시스템의 중요성이 높아질수록 기술 융합의 승수효과도 높아진다.

둘째, 개발강국의 상생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제로는 열린 플랫폼 모델에 기초하여 오픈 이노베이션을 활성화해야 한다. 애플은 새로운 종을 개방하여 다양한 종을 불러들이는 개방 생태계를 창조한다. 한국에서는 닫힌 플랫폼이 많았다. 그 결과 한국은 공급사슬 경쟁력은 있는데 플랫폼 개방 경쟁력이 약해서 콘텐츠 시장의 개발이 늦었다. 플랫폼이 열려 있어야 융합이나 통합을 통한 혁신이 활성화되고 새로운 틈새시장 창조(niche creation)의 기회가 생긴다. 열린 플랫폼 개방을 통해 앞으로 애플의 콘텐츠 장터인 앱 스토어에서 국내 중소벤처기업이나 1인 창업기업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셋째, 경영자 유형에는 3가지가 있다. 방향관리자로서 리더, 효율성 관리자로서 자원배분 경영자, 사회관찰자이자 기업생태학자 수준의 설계자이다. 우리나라에는 세 번째 유형의 경영자가 부족하다. 기업생태계의 설계자가 필요하다. 씨앗을 일찍이 뿌린 적이 있었던가? 준비된 자만이 계절을 만나서 변신을 이룰 수 있다는 법정 스님의 말씀도 바로 그것이다.

생태학에 중간교란가설이 있다. 산불 가뭄 태풍같이 중간 정도의 교란이 있을수록 이런 교란이 전혀 없거나 너무 자주 있는 생태계보다 건강하다고 한다. 대한민국 기업생태계가 생산에서 개발로, 닫힌 정원에서 열린 정원으로 변신하길 기대해 본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중소기업에 희망이 생긴다.

김기찬 가톨릭대 기획처장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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