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천안함 4강 외교’ 독일서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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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1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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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콜 서독 총리는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정상과 빠짐없이 전화통화를 했다. 콜은 외교안보보좌관에게 “긴박한 상황에서는 (독일을 분할 점령했던) 4개국 정상들과 확실하게 협의해야 한다”며 통화 추진을 지시했다. 콜은 10일에는 대처 영국 총리와 부시 미국 대통령, 다음 날엔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에 이어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동독 문제를 논의했다. 콜은 회담 전화통화 전문교환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4강 지도자의 지지와 협력을 이끌어냈고 마침내 1년 뒤 통독의 대업을 달성했다. 4강은 독일 통일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올해는 독일에는 통일 20주년이지만 우리에겐 6·25전쟁 발발 60주년이다. 우리는 통일은 고사하고 전쟁도 끝내지 못해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에 있다. 북한은 60년 전 남침을 기념하듯 천안함을 공격했다.

천안함 조사결과가 발표된 20일 한반도 주변 4강의 움직임을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4강의 대응과 비교하면 부러움을 넘어 답답한 생각이 든다. 미국은 북한의 침략행위를 규탄하는 백악관 성명을 냈다. 일본 총리는 긴급 각료회의를 소집하고 북한을 비난했다. 이에 앞서 오바마 미 대통령은 18일, 하토야마 일 총리는 19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천안함 대응방안을 협의했다. 나머지 4강인 중국과 러시아는 냉담했다. 중국은 후진타오 국가주석에서 외교부 대변인에 이르기까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를 합창했지만 정작 우리 합동조사단의 객관적 과학적 조사결과가 나오자 외면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각국은 냉정하고 절제된 태도로 유관 문제를 원만하게 처리하라”는 엉뚱한 논평을 내놓았다.

독일이 활용했던 4강과 오늘날 우리를 둘러싼 4강은 이렇게 다르다. 천안함을 넘어 남북통일이 현안으로 닥칠 때 중-러가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될지 걱정스럽다. 고르바초프가 동맹국 동독을 포기하고 서독을 지지한 것처럼 중국 지도자가 우리 편에 서리라고 누가 기대할 수 있는가. 엇박자로 일관하는 중국을 설득하지 못하는 우리의 능력 부족도 문제다. 왜 한국의 대통령 외교장관 외교안보수석은 서독처럼 4강의 카운터파트와 활발하게 접촉하지 못하는가. 천안함 외교에 실패한다면 통일 외교 성공은 꿈도 꾸지 못할 목표다.

중국은 ‘책임 있는 강대국(responsible great power)’과 ‘책임 있는 동맹국(responsible alliance)’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나라다. 국제사회에서는 강대국으로 군림하면서 혈맹인 북한의 도발은 한사코 감싸는 기회주의적 처신을 하고 있다. 우리가 파고들어야 할 틈새가 바로 그곳이다.

중국은 18일 미국이 유엔에 제출한 이란 제재 결의안에 동참했다. 전날 이란이 농축 우라늄 1200kg을 터키로 반출하기로 합의해 핵확산 우려가 상당히 해소됐는데도 제재에 찬성했다. 신화통신은 중국이 ‘대국으로서의 책임’을 고려했다고 전했다. 천안함 사태에 대해서도 중국에 대국의 책임을 촉구할 근거가 생긴 것이다.

이달 하순 한중일 정상회담은 정부의 외교력을 발휘할 무대다. 중국은 한국이 결정적 물증을 찾아내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강조했다. 자신이 놓은 덫에 스스로 걸려든 꼴이 됐다. 우리가 쌍끌이 어선으로 끌어올린 북한제 어뢰의 잔해는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증거다.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북한을 규탄하는데 중국은 홀로 방패막이가 될 것인지 태도를 분명히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가 20년 전 독일처럼 치열하게 4강 외교를 해야만 점점 힘이 세지는 ‘이웃 대국’에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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