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법을 우습게 아는 교활한 악당이 적지 않다. 그런 인간들을 볼 때면 나 자신이 ‘정의의 검사’가 되어 그들을 응징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런데 현실의 일부 검사는 정의의 검사는 고사하고 과연 악당을 단죄할 자격이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현직 검사장
둘을 포함해 부산 경남 지역의 검찰청을 거쳐 간 검사 100여 명이 이른바 스폰서(후원자)로부터 길게는 20여 년간 향응과
금품을 받고, 일부는 성(性)접대까지 받았다니 말이다.
‘스폰서 검사’는 우리나라 검찰의 고질적인 문제다. 작년
7월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의 낙마도 바로 이 문제 때문이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2005년 ‘삼성 떡값 검사’ 리스트를
폭로했다. 그 리스트의 진실 여부는 다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 법무부 장관 두 명을 포함한 검찰 고위직 이름이 줄줄이 적혀 있어
많은 국민이 충격을 받았다.
검찰은 스폰서 검사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철저한 자기반성과 뼈를 깎는 개혁을 약속했다.
그러나 검찰 역사상 향응이나 금품수수 혐의로 검사가 해임된 사례는 단 한 건뿐이다. 검찰은 개혁 차원에서 내부감찰 사령탑인 대검
감찰부장 자리를 개방형 공모직으로 바꿨다. 하지만 외부 적임자가 없다며 문제의 스폰서 검사를 그 자리에 앉혔다.
검사 비리 코스트 커야 해결된다
스폰서 검사 문제 해결에는 “검사의 엄격한 자기검열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서울대 사회학과의 송호근 교수는 주장한다. 그는 “검사는
능히 자정능력을 갖춘 사람들이어야 하고, 또 그렇게 믿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순진한 믿음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학생들에게 도덕적 모범을 보여야 할 교사들조차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비도덕적 행위도 마다않는다.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 스티븐 레빗 교수는 베스트셀러 ‘괴짜경제학’에서 시카고 공립학교 교사들이 1993∼2000년에 대규모로 성적을
조작했음을 데이터로 보여준다. 시카고 교육당국이 학생 성적이 나쁘면 담당 교사의 승진·연봉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하자 많은 교사가
담당 학생들의 성적을 올리려고 답안지를 고쳤다. 레빗은 인센티브에 따른 이런 부정행위는 기본적인 경제행위이므로 교사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고 설명한다.
검사가 스폰서를 두는 행위 역시 시카고 교사들의 부정행위와 마찬가지로 경제행위다. 다시
말해, 스폰서를 둘 경우의 이익이 비용보다 크다면 스폰서를 두는 것이 경제적이다. ‘삼성 떡값 검사’ 리스트가 폭로됐을 때 관련
검사들이 치른 비용은 현직에서 물러나거나 잠시 당황스러웠던 정도가 전부다. 그 후 그들은 삼성이 스폰서를 할 정도로 능력이
뛰어난 변호사로 인정받아 오히려 사회적 명망과 더불어 큰돈을 벌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어느 검사인들 스폰서의 유혹을 쉽게
뿌리칠 수 있겠는가.
시카고 교육당국은 부정행위가 명백하게 밝혀진 교사 12명을 해고했다. 이듬해 교사들의
부정행위는 30% 이상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부정행위 감소 인센티브로 작동한 것이다. 이번에
스폰서 검사 수사를 제대로 해 비리 검사들의 변호사 자격을 박탈해 보라. 그러면 앞으로는 스폰서 검사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수사를 위해 검찰의 도움에 의존해야 하는 진상조사위원회가 이런 일을 해내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와 같은 독립기구가 필요한 것이다.
검사의 재량권이 공정하게만 행사된다면 검찰의 수사 및
기소독점주의는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현실의 검사는 정치적 외압에 휘둘리고 스폰서에게 조종당하기 쉽다. 왜냐하면 정치인이나
스폰서는 검사의 막강한 재량권 행사를 악용해 위법행위에 따르는 처벌의 위험을 피하고 싶어 하고, 검사들은 그들을 이용해 출세하고
싶은 인센티브가 강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의 수사 및 기소독점주의는 제도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검찰개혁 이뤄내야
이명박
대통령은 11일 검찰과 경찰 개혁을 위한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TF에서는 특별검사 상설화를 비롯해
기소심의제도 등 검찰의 기소독점주의 완화방안과 공수처 도입 같은 검찰 개혁방안이 폭넓게 논의될 예정이다. 하지만 TF에서 실질적인
개혁안이 나와도 곧바로 제도화하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처럼 검찰의 막강한 로비력과 검사 출신 국회의원들의 친정 감싸기가
결합하면 개혁안의 국회 통과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도 대통령의 의지만 강력하다면 극복이 가능하다.
최근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여론 지지도가 50%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검찰 개혁을
반드시, 그리고 제대로 이뤄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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