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태 발생 직후부터 민주당을 비롯한 일부 야당은 국방부 장관과 해군참모총장의 문책 해임을 주장했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단서가 잇따라 포착됨에 따라 지금은 기조가 약간 달라졌지만 정권의 책임, 군의 책임을 앞세워 강조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對北) 강경책이 이번 사태를 초래했고, 거기에다 위기대응마저 소홀히 했으니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젯밤 여야 5당 대표의 지방선거 관련 정책토론회에서도 이런 주장이 나왔다. 어제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정세균 대표는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도 대통령부터 함장까지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공격했다.
사전 대비나 사후 대처에서 정부와 군이 잘못한 점에 대해서는 마땅히 책임소재를 가려야 한다. 천안함 사태의 원인 규명을 하기 위한 조사가 진행 중이고 감사원의 집중 감사도 실시되고 있으니 머지않아 누가 무엇을 잘못했고 마땅히 할 일을 소홀히 했는지 드러날 것이다. 문책은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다. 그런데도 지금 단계에서 문책론을 앞세우는 것은 동기가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천안함 사태의 책임을 우리 내부로 돌려 북의 책임을 희석시키려는 의도이자, 선거에 이용하려는 속셈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천안함을 침몰시킨 공격 수단과 공격의 주체까지 구체적으로 추정되고 있는데도 내부 문책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은 정작 가해자에 대한 응징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 일부 친북 매체를 포함한 이들 세력은 ‘이명박 정권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승하지 않고 강경책을 편 탓에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투로 비난한다. 이런 주장만 놓고 보면 이들도 북한 소행이라고 전제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이들은 침몰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근거가 없으니 북의 소행으로 몰지 말라’고 북을 두둔한다. 속이 들여다보이는 이중성이다.
군 문책 주장에 앞서 정치권과 정부부터 자성(自省)해야 한다. 김영삼 정부 이래 지금까지 군을 정치의 발밑에 놓고 군의 집단적 좌절감을 부채질한 역사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심지어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북이 먼저 도발하더라도 즉각적인 맞대응은 자제하라는 지시까지 했다. 군의 책임을 물으려면 정치의 원초적 책임도 따져야 한다.
천안함 사태 수습의 순서는 가해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응이 먼저이다. 그 다음은 구멍이 뚫리지 않을 안보시스템 재구축이고, 가장 나중에 이루어져야 할 일이 책임자 문책과 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