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평론의 죽음’과 법원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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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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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직업이 문학평론가 미술평론가 같은 예술평론가다. 평론가 직함을 내세우는 사람은 볼 수 있지만 정작 그가 쓴 평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발표 공간이 무한한 온라인에서도 평론가의 활동은 뜸하다. 그 많던 평론가는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평론가의 역할은 막 생산된 예술 작품을 놓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전문가의 눈으로 평가해 주는 일이다. 그러나 요즘 관객들은 평론가보다는 먼저 그 작품을 접한 다른 수용자의 평가를 신뢰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권력화 이념화로 자초한 위기

특히 영화 분야는 평론가의 추락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평론가가 좋은 영화라고 추천해 놓았기에 가서 봤더니 영 아니더라는 말이 나온 지는 오래되었다. 정반대로 평론가들이 나쁘게 평가한 영화가 대중의 인기를 모은 일이 2007년에 있었다. 심형래 감독이 만든 ‘디워’는 일부 평론가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84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평론가 집단과 ‘디워’ 팬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평론가들은 많은 것을 잃었다.

과거 평론가의 위세는 대단했다. 예술가에겐 생살여탈권을 쥔 사람들이나 다름없었다. 일약 명성을 얻게 할 수도, 한순간에 나락에 떨어뜨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문화계에서는 ‘평론의 위기’를 지나 ‘평론의 죽음’까지 말하고 있을 정도로 먼 얘기가 되어 버렸다.

평론이 실종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권위와 신뢰를 상실한 탓이 크다. 예술평론 하면 ‘어렵다’는 생각이 바로 떠오를 만큼 난해한 글로 자기만의 성(城)에 갇혀 버렸다. 대중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고립을 자초한 것이다. 일부에선 권력화, 이념화 현상이 나타났다. 힘에 취해 예술가 위에 군림하는가 하면 집단을 이뤄 남에겐 가혹하고 같은 편끼리는 우호적으로 일관했다. 권위를 잃은 평론은 조롱거리로 전락하거나 아예 무관심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예술평론처럼 우리 사회에서 권위가 꼭 필요한 분야에서 권위가 무너지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교사의 말이 먹히지 않게 된 교육현장이 그중 하나다. 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존경심이 사라진 학교에선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법원에서 일어난 편향 판결 문제 역시 앞으로 판사의 권위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 우려가 높다.

지난해 말부터 시국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들이 좌파 진영의 ‘승소(勝訴) 시리즈’로 이어졌다. 11월 민주노동당 당직자 12명에 대한 공소기각 판결과 정연주 전 KBS 사장의 해임 취소 판결, YTN 노조원 해직 무효 판결을 시작으로 12월에는 김정헌 전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의 해임 위법 판결,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반대했던 전교조 해직교사 7명에 대한 해임 취소 판결이 있었다. 올해 들어서는 강기갑 의원 국회폭력 무죄, 전주지법의 전교조 교사 시국선언 무죄, PD수첩 제작진 무죄 판결이 계속됐다.

법원의 권위 추락은 파국의 길

정부와 관련 기관들이 취한 조치가 번번이 잘못된 것으로 판결이 나면서 처음에는 이명박 정부가 얼마나 일을 무리하게 처리했기에 재판에서 질까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정부 쪽만 이렇게 질 수는 없는 일이기에 법원이 제대로 판단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법원에 대한 불신감이 크게 높아진 것은 난해한 법 논리를 떠나 판결 내용이 국민 상식과 괴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부 판사의 이념화, 권력화는 예술평론이 걸어온 ‘추락의 길’과 많이 닮아 있다. 평론 없는 예술이 혼란과 영합주의로 귀결되듯이, 법과 법관에 대한 존경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판결에서 권위와 신뢰가 사라지면 국가 질서가 붕괴되는 파국을 빚는다. 법원은 서둘러 위기 수습에 나서야 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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