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ICL)의 운명이 아침저녁으로 오락가락하니 참으로 유감스럽다. 올 1학기부터 시행한다던 새 제도를 법 개정 무산으로 시행할 수 없다더니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국회가 심의에 전격 착수했다고 한다. 여야 정치권과 정부가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국민의 공분을 샀는데 아직은 기대의 끈을 놓지 않아도 될 것 같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기에는 정치싸움에 휘둘리는 교육에 마음이 아프고 등록금 상한제 논쟁으로 앞길도 멀어 보여 걱정이 앞선다.
정치싸움에 교육현안 오락가락
이 상황에서 우선은 법안을 빠르게, 그러나 심도 있게 논의하여 처리해 달라는 주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여야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데 대해 안도하지만 이제부터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해 공표한 대로 1학기에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 뻔한 학생과 학부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업무를 실질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대학의 처지도 하루가 급하다. 2월 초까지 신입생 등록, 3월 초까지 재학생 등록으로 시한에 쫓기는 일선 대학행정 업무의 어려움을 예상한다면 정치권의 결자해지 노력은 빠를수록 모두에게 좋다.
법안 처리 과정에서는 국회와 정부가 대립 시각을 보이는 대학등록금 상한제가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한다. 등록금 상한제는 대학교육에 대한 이념과 철학, 현상 인식에 따라 첨예하게 입장이 갈릴 수 있는 사안이다. 따라서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법안 처리와 연계하는 모습은 결코 적절치 않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는 국민과 정치권이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시간적인 절박성에 처해 있다. 둘은 다소의 연계가 있겠으나 본질적으로 다른 사안이다.
그리고 법안 처리 지연이 문제 되다 보니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5.8%라는 현재의 이자율에 특단의 조치를 촉구한다. 취업 후 도대체 얼마를 벌어 얼마씩 갚아 나갈지 산술적으로 따져 봐야 하고 아이 못 낳겠다는 상황이 재연되지 않을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사람과 교육에 투자하는 만큼 장기 저리 수준으로 더 낮추고 대신 채무 불이행에 합리적으로 단호히 조치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제기된 문제점을 이번에 심사숙고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급한 대로 1학기에 새 제도를 시행하더라도 철저한 후속조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경제생활 경험이 없는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인데 미래에 일어날지 모를 도덕적 해이 문제를 어떻게 합리적 수준에서 방지함으로써 제도의 영속성을 확보할 것인가?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옛말을 무의미하게 만들 제도가 돼야 한다. 구체적으로 봐도 적정 이자율, 대출자격, 대출한도, 보증방법, 취업 후 소득 금액에 따른 상환액 차등화, 상환액의 소득공제 여부에 이르기까지 합리적 의사결정과 함께 관련 주체 간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 너무도 많다. 그 밖에도 등록금 수준, 재정지원에서의 대출, 장학금, 보조금 간 비율에 대한 합의 도출 등 새 제도의 성공을 위한 조건은 생각보다 많다.
새학기 시행 안되면 공분 살 것
노파심이겠으나 만에 하나 1학기에 기존 제도로 가는 경우에는 새 제도에서 구제하려던 채무 불이행 학생 2만 명의 구제책과 1학기 대출만이라도 취업 후 상환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이번에 다시 법안 처리가 무산되고 1학기 시행이 어렵게 되면 학생과 학부모는 유감스러움을 넘어 분노를 느끼고 정치권과 정부는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문제에서 돌이키기 어려운 신뢰 상실을 경험할 것이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도입을 둘러싼 혼란을 보며 교육 백년대계의 참뜻과 우리 헌법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주창하는 이유를 새삼 음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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