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민노총은 노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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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6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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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0쪽짜리 자료를 읽고 이렇게 피가 끓긴 또 처음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홈페이지에 실린 노조간부용 교재 ‘5기 노동자학교’를 보고 나면 국민의례를 더는 할 수 없어진다. 기업과 근로자가 상생하는 관계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시장경제는 망할 수밖에 없는 제도이고 분단은 노동운동을 어렵게 하는 본질적 문제인데, 어찌 한가롭게 복수노조나 노조전임자 문제를 놓고 노사정 합의를 할 수 있는지 가소로울 정도다. 매끄럽게 서술된, 그러나 왜곡이 적잖은 내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反자유민주 反시장의 정치집단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회원국 노조가입률을 보면 47년간 세계의 노동운동은 내리막길이다. 2007년 현재 우리나라가 10%이고 미국이 11.6%, 노조 천국이라는 프랑스는 7.8%다. 오랜 사회민주주의국가인 스웨덴은 70.8%지만 1993년 83.9%에 비하면 꽤 떨어졌다. 산업화의 핵이던 제조업 비중은 줄고 세계화 정보화로 비용과 기술경쟁이 치열해져서다. 뉴욕타임스는 “프랑스가 강성노조의 온상이라는 개념은 잘못”이라는 노동장관의 발언까지 전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선 한국노총을 빼면 조직률 5%도 안 되는 민노총이 나라를 뒤흔드는 걸까. 그들 스스로 밝힌 규약을 보면 알 수 있다. 민노총의 목적은 ‘노동자의 정치 경제 사회적 지위 향상’만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이 보장되는 통일조국 민주사회 건설’이기 때문이다. 언론인 남시욱 씨가 ‘한국의 진보세력 연구’에서 “노조가 좌파 변혁세력인 건 어느 나라나 공통적이지만 민노총의 정치세력화는 특이하다”고 했을 정도다.

이 목적을 위한 민노총의 첫 번째 사업 역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다. 노동조건 개선 같은 건 일곱 번째로 떨어져 있다. 우리나라 노조법은 ‘노조라 함은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이고 정치활동을 주목적으로 하는 경우는 노조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민노총은 노조가 아니라는 얘기다.

더구나 민노총의 두 번째 사업인 자주 민주 통일은 북한 대남투쟁의 3대 목표와 일치한다. 민노총이 건설하겠다는 통일조국 민주사회도 우리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나라와 거리가 멀다. 한미 정상이 6월 발표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한 평화통일에 대해 민노총이 격렬히 규탄한 걸 보면 안다. 자유기업원은 ‘민주노총의 이념과 노동운동 비판’이란 책에서 “이들은 노동자 계급의 독자성을 내세우며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한다”고 했다. 노조란 노동자를 교육하는 학교에 불과하다. 지금껏 노조전임자에게 월급을 준 기업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타도를 꾀하는 정치세력에 군자금을 바쳐온 셈이다.

反자유민주 反시장의 정치집단

그러니 민노총이 어제 정부와 자본가계급(한국경영자총협회), ‘수천만 노동자의 권리를 팔아먹은 모리배’(한국노총)의 합의에 반대투쟁을 선언한 것도 그들로선 당연한 수순이다. 노동자를 자처하면서도 머리띠 두르고 나서는 일밖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직업투쟁꾼들이기 때문이다. 교재에서 고백했듯,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가 시행되면 일본식 노사협조주의가 나타나는 것도 두려울 거다. 파업을 무기로 좌파이념과 노동권력의 단맛을 누리는 그들이나, 핵이라는 벼랑 끝 전술로 식량과 원조를 따내는 북한이나 막상막하다.

물론 그들이 추운 날 아무리 거리로 뛰쳐나가봤자 대한민국이 적화통일된다고 걱정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교재는 ‘선거제도를 무시하고 궐기하여 썩은 정권을 갈아 치우는 정치세력화’가 결국 정의로운 항쟁으로 결론난다고 했다. 날씨가 도와줄지 의문이지만 민노총은 지난해 100여 일간 국정을 마비시켰던 쇠고기집회의 재현을 고대하는 게 뻔하다.

어떻게든 투쟁을 일으키는 게 그들의 전술이라면 민주적 사회질서와 시장경제가 교란되기 전에 정부는 법대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착하고 순진한 국민도 민노총이 과거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고, 명칭에 민주와 노조가 들어 있다는 이유로 정부의 정당한 대응을 독재회귀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전교조가 바로 민노총에 가장 많은 대의원을 파견한 대주주라는 데 있다. 민노총은 두 달 전 공무원노조의 민노총 가입을 우려하는 여론이 들끓었을 때 “전교조도 공무원이지만 20년간 민노총 가입 활동에서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왜 흥분하냐”고 우리를 일깨워줬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민노총에 공무원의 가입을 허용할 수 없다면 교사에게는 더더욱 민노총 활동을 용납해선 안 된다. ‘개인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경쟁하다 강자는 남고 약자는 죽으라는 것이 시장’이라고 교육하는 민노총 소속 전교조 교사에게 우리 아이들을 맡길 순 없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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