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재교]시민단체, 투명회계로 새출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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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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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가 위기다. 시민단체의 신뢰도가 나날이 떨어지더니 이제는 존립마저 위협받을 지경이다. 감사원이 연간 8000만 원 이상 보조금을 받은 543개 민간단체를 대상으로 감사를 벌인 결과 2006년부터 3년간 전체 보조금 4637억 원 가운데 500억여 원을 횡령한 사실이 밝혀졌다니 말이다. 감사원이 검찰에 16개 민간단체 임직원 21명의 수사를 요청했다는데, 그저 놀라울 뿐이다.

공금 500억 횡령 ‘곪은 상처’ 터져

아니, 놀랍지는 않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상당수 시민단체가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돈 무서운 줄 모르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는 1990년대 이후 급성장하여 이른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3부(府), 언론의 4부 다음의 제5부라 불릴 정도로 힘이 커졌지만 과연 엄청난 힘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걱정스러웠다. 국고보조금을 포함하여 연간 수억 원, 심지어 1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사용하게 된 시민단체가 여전히 주먹구구로 자금을 관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위태위태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이든 단체든 분에 넘치는 힘을 갖게 되면 그 힘에 치이기 마련이다.

시민단체의 영향력은 2000년의 낙선 낙천운동에서 절정을 보였다. 총선연대는 떼어 놓은 당상 같던 국회의원을 줄줄이 떨어뜨리는 권세를 과시했다. 공교롭게도 김대중 정부가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을 제정 시행하여 국고보조금을 주기 시작한 것도 같은 해부터다. 준마에 날개를 단 격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시민단체가 내리막길을 걷게 됐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시민단체가 정치운동에 앞장서면서 순수성을 잃기 시작한 데다 2004년 총선에서 위임받지도 선출되지도 않은 권력이 제어되지 않는 힘을 휘두르자 국민이 시민단체를 경계하면서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시민단체는 이후 신뢰를 회복하지 못했다. 이번 감사 결과를 두고 시민단체 일각에서 좌파 시민단체를 탄압하기 위한 표적 감사라고 주장하는 모습을 보면 신뢰 회복은 요원해 보인다. 좌우 민간단체 모두 적발되기도 했거니와 영수증을 위조하는가 하면 컴퓨터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계좌이체 영수증 수백 장을 위조하여 거액을 횡령하는 등 중범죄 사례가 허다히 드러난 마당에 표적 감사 운운하는 것은 너무 비겁하다.

문제는 회계 투명성이다. ‘시민 없는 시민단체’가 대다수인 우리 사회에서 시민단체가 정부보조금을 받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면 지나치게 비현실적일 것이다. 대부분의 시민단체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고, 시민운동가는 생계비에도 미달하는 수입으로 생존한다. 정부보조금을 외면할 수만은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돈은 워낙 요사스러운 물건이라서 감시가 소홀하면 멀쩡한 사람도 공금횡령이라는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십상이다.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도록 투명하다면 감히 공금에 손을 댈 사람은 없을 터이니 시민운동가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회계는 투명해야 한다.

보조금 용처 밝혀 신뢰회복해야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는 지금까지 실제 공헌 이상의 영향력을 향유했다. 시민운동가의 상당수가 민주화운동으로 희생을 치른 사람이다 보니 보상의 성격이 가산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편향된 정치활동과 이번의 공금횡령 사건으로 보상은 소진됐다고 본다. 이제 시민운동이 사회에 실제 공헌함으로써 신뢰 회복을 시작할 시점이다. 출발은 도덕성이다. 정부보조금이 입에 달기야 하겠지만 도덕성과 양립하기 어렵다. 시민단체는 회비와 기부금만으로 운영되어야 도덕적으로 떳떳할 수 있고, 이는 회계의 투명성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회계 투명성은 시민단체의 존립 기반이다.

이재교 변호사 공정언론시민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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