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성호]대학 스스로 구조개혁 나서라

  • Array
  • 입력 2009년 10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얼마 전 경북지역의 대학이 채무 불이행으로 폐교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대학의 불행은 어쩌면 지나치게 방만한 우리 고등교육체제의 재앙을 예고하는 전주곡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200개의 4년제 대학과 146개의 전문대를 포함해 400여 개의 고등교육기관이 산재해 있으며 재적 학생만도 360만 명쯤 된다. 전국의 고등학생이 200만 명도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 대학의 양적 팽창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정작 대한민국의 대학을 경쟁력이나 교육 및 연구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평가하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 많은 우리 대학 중 세계적인 명문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대학은 한두 개에 불과할 정도이다.

학생선발-재정의 자율권 줘야

한국의 대학이 지식생산자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다는 점은 수년간 언론매체를 통해 지적되어 온 바이다. 물론 대학이 이런 문제점을 수수방관한다는 것은 아니다. 대학 나름대로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실현을 위해 애쓰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 대학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이 같은 개별적인 노력과 아울러 고등교육 전반에 걸친 큰 틀의 구조개혁이 시급하다.

대학별 분화 및 특성화를 기초로 하는 미국 대학교육의 체제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효율적이라고 평가받는다. 2년 전 영국의 권위 있는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적인 대학교육의 위기를 특집으로 다루면서 미국대학의 틀을 모방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하버드대 총장을 오래 지낸 데릭 복은 미국 대학의 성공비결을 자율성 경쟁 대응력 등 세 가지로 분석한다.

우리의 대학도 결국 자율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자율은 대학의 절대적인 자유로 해석되기보다는 대학교육의 결과에 대한 일체의 책임을 대학이 지는 책무성(accountability)으로 규정돼야 한다. 특히 학생 선발과 재정 부문에서의 자율성 확보는 매우 시급한 사안이다. 대학의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자율성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책임을 대학에만 전가할 수는 없다. 몇 해 전 교육부가 대학에 대한 차등지원을 골자로 하는 안을 발표한 바 있다. 기본적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대학의 구조개혁을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는 인식에는 반대한다.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공립대학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유럽의 대학개혁이 관주도체제의 틀에서 탈피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다음으로, 대학 간의 경쟁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수백 개의 대학이 동일한 기준을 토대로 경쟁하자는 말이 아니다. 대학이 그간 추구한 외형적 유사성에서 탈피하여 개별 대학의 특성과 여건에 따라 기능과 역할을 차별화하고 유사한 기능을 가진 대학 간의 경쟁을 통해 교육의 질을 제고해야 한다는 말이다.

기초과학-인문학으로 무장을

끝으로 구조개혁의 기준이 대중적 인기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소위 인기학과라고 하는 것은 많은 경우 시대적 추세의 반영이다. 영원한 인기학과는 없다. 오늘날 선진국의 많은 대학이 학부교육에서 기초과학과 인문학을 강조한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지식의 실용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풍토가 로마제국의 몰락을 초래한 한 가지 원인이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결론적으로 구조개혁이란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이다. 부적응은 곧 소멸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적응의 주체가 대학이라는 점이다. 집단적 이기주의를 배제하고 구성원 간의 절충과 합의를 존중하는 자율적인 개혁만이 진정한 개혁이 될 수 있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