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논평]한국 순수한 애국심 추악한 내셔널리즘 깼다

  • 입력 2006년 3월 17일 17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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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인 승리였습니다.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우리 선수들은 일본을 2대1로 다시 이겼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선수와 코치들이 한 덩어리가 됐을 때 서재응 선수가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았습니다. 그는 왜 태극기를 꽂았을까요.

일본을 눌렀기 때문일 것입니다.

[3분 논평]한국 순수한 애국심 추악한 내셔널리즘 깼다

일본과의 스포츠 경기는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갖기 마련이지만 이번 경우는 더 특별했을 것입니다.

물론 스포츠가 민족주의와 과도하게 결합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입장을 바꿔 일본팀이 이겨서 마운드에 2개의 일장기를 꽂았다고 생각해봅시다. 스포츠가 정치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번 만큼은 태극기를 꽂을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향기롭다고 결코 말할 수 없는 내셔널리즘의 경연장에서 우리 대표팀은 선의(善義)의 민족주의 정수를 보여줬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미국을 보십시오. 일본과의 경기에선 명백한 오심으로 승리를 훔치더니, 오늘 멕시코와의 경기에서도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욕을 먹었습니다.

이번 대회를 주최한 의도도 미국 일본끼리 패권을 다툼으로써 흥행도 하고 두 강대국의 위상도 과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진 방식도 각 조의 1,2위팀이 교차해서 4강전을 치르도록 돼 있는 국제대회의 관례를 깼습니다. 추악한 내셔널리즘(ugly nationalism)의 전형입니다. 한국쯤은 들러리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일본은 또 어떻습니까. 우리 팀에 두번 지고 나서 일본의 우상 이치로는 "오늘은 내 야구 인생에서 가장 굴욕적인 날이라고 했습니다.

알 수 없는 욕설을 내뱉기도 했습니다. 그의 표정과 태도는 ‘동네 야구’ 수준인 한국에 졌다는데 대한 굴욕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김인식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두 세 게임 이겼다고 우리 야구가 일본보다 수준이 앞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은 우리 대표팀 같은 팀을 두 세 개 더 만들 수 있다. 앞으로 젊은 지도자들이 미국과 일본에서 좋은 것을 배워서 자라는 어린이 야구 선수들을 지도하면 미국 일본과 비슷하게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을 들으면서 저는 우리 대표팀이 왜 6전 전승으로 4강에 진출했는지, 그 이유를 비로소 정확히 알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미국와 일본의 오만하고 편협한 대국주의를 열정과 땀으로 부숴버린 한국팀은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심부에 대한 변방의 통쾌한 한판승이었습니다.

이재호 수석논설위원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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