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시국대담]"남북-언론문제 편가르기 국론분열 초래"

  • 입력 2001년 7월 9일 18시 53분


《남북문제를 둘러싼 여야의 대립을 비롯해 노사 문제, 언론 문제 등 여러 현안을 둘러싼 갈등과 상처가 나날이 깊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부 여당은 사회통합에 나서기 보다는 분열을 방치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의 혼란이 장기화될 경우 대한민국의 국체마저 흔들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학계 원로인 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와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의 대담을 통해 현 갈등상황의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해 본다.》

▽김태길 교수〓사회 전반에서 갈수록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남북문제나 노사문제 등 전통적인 갈등요인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언론문제를 비롯해 지식인들의 의견 표명을 둘러싸고도 갈등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우선 남북문제부터 짚어볼까요.

▽김용준 교수〓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비롯한 남북 문제에 대해 국민의 컨센서스가 아직 이뤄지고 않았다고 봅니다. 특히 진보적인 인사들은 북한에 관해서는 무조건 호응하고 호의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입니다. 같은 잣대로 남북한을 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컨센서스가 이뤄지지 않는 거죠.

▼과거정권 전철 그대로 밟아▼

▽김태길〓남북 관계에 대해서 의견이 갈리는 것은 그동안 워낙 남북의 갈등이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갈등의 배후에는 ‘편가르기 심리’가 있을 겁니다. 우선 편부터 갈라놓고 보는 것이지요.

▽김용준〓김 교수님 말씀은 결국 이데올로기 문제로 나아가는 것인데, 요즘은 어떻게 보면 이데올로기가 사라졌다고도 말하는데 어떻습니까.

▽김태길〓세계적으로는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이데올로기 대립이 엄연히 남아있습니다. 이것은 세대간 불신과도 관련이 깊을 거예요. 여야가 이런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대화의 마당을 마련해야 하는데 도리어 서로 분열시키고 있는 듯합니다.

▽김용준〓며칠 전 보도를 보니 여당쪽에서 통일헌법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가 봅니다.

▽김태길〓아마 남쪽이 통일시나리오를 다 짜둘 테니 김정일 위원장보고 감투만 써달라는 것 같죠?(웃음). 그렇게 하면 북쪽이 따라오겠습니까.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남쪽에서조차 통일에 대한 컨센서스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이 같은 성급한 통일논의는 오히려 분열만 조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통일문제에 관해서는 남북대화에 앞서서 남남대화부터 제대로 해야 합니다.

▽김용준〓여야 갈등이란 옛날부터 계속된 것이긴 하지만 요즘 더 심해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김태길〓첫째는 예전에 비해 야당이 제목소리를 내다보니 정쟁이 심하다고 느껴지는 것이겠죠. 둘째는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큰 데, 늘 싸우기만 하니까 정치에 대한 비판이 높아져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김용준〓여야가 각자 목소리를 내는 것은 사실 나쁠 건 없죠. 박정희정권 시절에 비해 지금은 야당이 목소리를 내니까 그때보다는 좋아졌다고 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꽤나 답답합니다. 두 김씨가 집권하면 군사정권보다 더 잘될 줄 알았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어 김대중 대통령이 됐지만 사회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느끼는 국민이 더 많습니다.

▽김태길〓야당시절과 집권당으로서 할 일은 엄연히 다르지요. 폴란드의 바웬사가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요. 야당으로서의 자세와 집권당으로서의 자세가 다른데 그것을 구분하지 못해 이런 혼란을 야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용준〓갖은 고초를 겪은 사람들인데 왜 먼저 사람보다 나을 것 없이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지 참 궁금합니다.

▽김태길〓현 정권은 국가 경영의 노하우가 부족한 것 아닐까요. 야당을 오래하다 보니 국가 경영의 지혜를 터득하지 못한 게 아닌지, 그렇다면 지혜를 국민으로부터 폭넓게 얻어야 하는데 측근 몇사람에게 의존하다 보니 이런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결국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봅니다.

▽김용준〓통치의 노하우 얘기를 하셨는데 현 정권은 과거 독재정권의 핍박을 받았으면서도 통치행태는 과거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듯합니다. 자유당 초기 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당시 이승만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 이대통령을 찾아갔는데 메모지를 주더랍니다. 앞으로 등용할 사람 명단인데, 그가 알고 있는 이름은 하나도 없고 다 모르는 사람이었답니다. 인재를 폭넓게 등용한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은 김대통령과 야당생활을 같이한 사람 등 ‘예스맨’들을 주로 등용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난번에 야당출신 인사를 법무장관에 기용했다가 수십시간만에 교체한 해프닝 등이 대표적인 인사 난맥상으로 꼽을 수 있겠지요.

▼방송사 신문비난 이해못해▼

▽김태길〓국민의 정부가 구 정권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는 말씀이군요. 사실 세계환경은 급변하는데 우리의 집권층은 과거 행태 그대로입니다. 게다가 전문지식도 없는 무경험자를 등용하는 경우가 잦아 문제가 더욱 꼬이는 것 같습니다.

▽김용준〓무경험자 얘기를 하셨지만 문제는 또 있습니다. 현 정권은 군사정권때 요직을 맡았던 사람들을 다시 요직에 앉히고 있어요. 이는 근본적으로는 통치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을 그냥 ‘미스터 프레지던트’라고 부릅니다. 오래 전부터 친했던 사람이 김 대통령의 측근이 됐는데 얼마 전 만나보니 어투가 확 바뀌었더군요. “분부하셔서…”라는 식으로 옛날 상감에게 쓰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더군요. 그런 자세로 어떻게 대통령과 격의 없이 의견을 나눌까, 그리고 이런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대통령이 여론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을까, 정말 답답했습니다.

▽김태길〓요즘 언론탄압 문제도 그렇습니다. 공평과세라고 말하지만 사실 언론탄압의 성격을 갖고 있거든요. 언론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언론을 살려가면서 개혁해야지 지금처럼 언론 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정책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이 정부 여당을 견제하고 비판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김용준〓정권 초기에 지지도가 높을 때 이랬으면 문제가 덜 될 수도 있었겠죠. 결국은 공공의 이익보다는 편의적으로 개혁카드를 이용한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김태길〓정권 초기에 인기가 좋을 때는 언론과 사이가 좋았는데, 그때 지금처럼 언론을 탄압했겠어요.(웃음) 특히 최근에는 방송들이 주요 신문들을 공격하고 비판하던데 어안이 벙벙할 지경입니다. 근대화와 독재와의 싸움에서 신문이 큰 공을 세운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과거 독재정권시절 방송의 행태는 도저히 언론이라고 말할 수 없을 지경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방송들이 자기 반성은 안하고 신문들을 비판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지요.

▽김용준〓갈등을 극복하고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방안에 관해서도 얘기를 나눠보지요.

▼야당-비판의견도 사랑해야▼

▽김태길〓우선 모두가 함께 추구할 수 있는 국가 전체의 공동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이런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정부 여당이 여론을 정확히 읽고 다양한 계층과 집단의 이해관계를 조정, 통합해야겠지요. 우리나라 전체를 잘되게 만들기 위한 공동의 목표를 제시했다면 이토록 사회 각계각층이 분열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모두 사는 방법이라고 여러 가지를 제시했지만 사실 자신의 정파적인 이익이 얽혀있는 것이 많았습니다. 정치문제는 정당 내부부터 민주화되지 않는다면 정치 민주화와 사회발전은 요원하지요. 또 어떤 사회문제건 지도층의 시야가 좁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김용준〓맞습니다. 전체를 봐야하는데 자기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것을 전부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것이 이 사회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일 겁니다. 이럴 때 지식인의 비판이 필요한데, 이제는 어느 신문에 글을 쓰느냐에 따라 시비를 붙는다니 우스운 일이지요. 제가 대통령과 면담할 기회가 생긴다면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대통령도 됐고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는데 무엇을 더 바라는 것이냐고요. 북한과는 화해하려고 하면서 왜 남쪽에서는 대화와 통합에 신경을 쓰지 않는지 말입니다.

▽김태길〓아직도 우리나라는 저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보다 경제가 앞선 일본인들도 한국인의 생명력을 부러워한다지 않습니까. 우리는 민주의식도 강하고 비판적 사고도 강합니다. 앞으로는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정권을 유지하기도 어렵고 정권을 잡는 것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김용준〓함석헌 선생님이

생전에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함 선생님은 “민주주의란 다른 게 아니야, 서로 사랑하는 게 민주주의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대통령이 시야를 돌려서 야당도 사랑하고 자기에게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사랑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정리〓이광표·윤정훈기자>kplee@donga.com

▼김태길(金泰吉)명예교수▼

△1920년 충북 중원 출생

△서울대 졸업,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철학박사

△1965∼85년 서울대 교수(철학과)

△학술원상 인촌상 국민훈장동백장 수상

△현 서울대 명예교수

▼김용준(金容駿) 명예교수▼

△1927년 충남 천안 출생

△서울대 졸업, 미국 텍사스A&M대 이학박사

△1965∼93년 고려대 교수(화학과)

△1975년 교수 강제해직 후 1984년 복직

△현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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