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된 아들에게…

  • 입력 2001년 3월 21일 14시 58분


지난해 동아일보에 입사해 현재 수습기간이 거의 끝나가는 수습기자들 앞으로 얼마전 한통의 편지가 배달됐습니다. 수신인이 '편집국 편집부'로만 쓰여있어 몇몇 선배기자들이 읽어보게 됐습니다. 짧지 않은 편지 속에는 언론인의 길을 선택한 아들이 진정한 기자가 되기를 바라는 당부와 격려가 가득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언론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판단에서 이 편지를 공개합니다.

<동아닷컴 운영자>moonlake@donga.com

여보게, 자네

이제야 나는 마음이 놓이네,

인생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라고

젊은이다운 고뇌를 하던 자네가

비로소 자네의 길을 찾은 것 같으이,

자네의 빛나는 얼굴에서 나는 보았다네.

그러나

자네가 가려고 하는 길이 참으로 어렵고 힘든 길임을

자네는 알고 있는 듯하며, 나는 안심이 되었다네.

그 길은,

무거운 사명감과 책임감을 동반해야 하는 길일세.

정의와 질서가 바로서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자가 존재한다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져야할 것일세.

허나, 자칫하면 그 자부심은 오만해지거나, 아니면

군림하려는 자세로 오해받기도 쉬운 것이 사람의 나약함이네.

기자는,

그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이용하거나, 이용당해서도 결코 안되며

그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양심에 정직해야 하네.

결코 권력에 편승하거나 약해지진 말게나.

우리 사회가 맑고 건강하고 정직한,

아름다운 세상이 되려면

언론이 항상 정도(正道)를 지켜야 함을 잊어서는 안되네.

신문의 뉴스는 항상 신선하고 참신해야 하네.

정직하고 정확한 기사로

독자들의 신뢰를 받아야 하며

단순한 흥미와 호기심의 오락성 기사로

신문을 가볍게 여기게 해서도 안되며

냉철한 이성의 붓끝으로

어떠한 사건도 왜곡하지 않고

진실성과 정당성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판단하게 해야 하네.

기자는

예리하고 냉철한 눈과 머리를 가지되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주관적인 생각을 갖되 객관적 시선으로

시간과 사물을 봐야 하네.

죄를 고발하되 인간을 미워하지 말게 하며

어둡고 병든 곳에 빛이 되어주되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네.

일시적인 영웅을 만들어 교만하게 해서도 안되며

한번의 실수로 영원한 패배자로 인생을 송두리째

잃게 해서도 안되네.

사회의 구석구석을 살피되 시작과 끝을 지켜봐야 하며,

그래서 언론의 힘이 얼마나 두려운가도 독자들이 알게 해야 하네.

어떤 경우에도 기자는 자신의 양심에 정직해야 하는 것일세.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이 기자의 본분일세.

참으로 자랑스러운 기자의 명예란

자신을 지켜내는 정의의 자존심이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다양하게 발휘할 수 있는 것이라네.

다시 한번 바라건대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고

두둑한 배짱으로 세상과 맞서라는 말을 해주고 싶네그려.

그리하여, 특종을 잡게나.

어미는 지금

지구의 반대편인 영국의 런던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네.

55세라는 결코 젊지않은 중년의 나이로

허름한 가방 하나 메고

세계의 젊은이들 속에 묻혀

영어를 공부한답시고 모험을 하고 있다네. 하하.

칼릴 지브란의 말대로

화살은 활의 시위를 떠나 세상속으로 날아갔네.

이제,

어미가 쏘아보낸 두 개의 화살이

세상안에서, 또한 세상밖에서

제몫의 인생을 당당히 살거라 믿고 지켜볼 뿐이라네.

아울러

우리나라 신문역사의 길고 험난한 길을

꿋꿋이 지켜온 동아일보에 함께 입사(入社)한

자네와, 여섯명의 자랑스러운 아들·딸에게

박수와 축하를 보내며

그들과 더불어 자네의 맹활약을 기대해 보겠네.

런던에서

어느 어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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