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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월 21일 16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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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풍에 깎여서인지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파인 팔미도 등대장 허근씨(56). 인천항을 드나드는 바닷길의 복판에 우뚝 선 팔미도 등대에서 배들의 길잡이로 오랜 세월을 보냈다.
“요즘은 선박들이 첨단화돼 등대 의존도가 약해졌지만 과거에는 야간이나 안개가 끼었을 때 오로지 등대 불빛에만 의지해서 항해를 했습니다.”
해양수산부의 전신인 교통부 해운국에 근무했던 친척의 소개로 등대원 시험에 응시해 71년 11월 유인등대인 ‘부도’(옹진군)에서 등대원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같은 해 2월 결혼한 아내와 신혼방을 등대 기숙사에서 꾸몄고 세 자녀 중 두 자녀를 그곳에서 얻었다.
“부도에서 한 4년 근무하고 선미도 등대를 잠깐 거쳐 팔미도로 오면서 교육 때문에 처자식을 육지로 보냈습니다.”
허 등대장의 하루 일과는 일반인이 가요 ‘등대지기’를 떠올리며 막연히 생각하는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바쁜 일정 때문이다.
일몰, 일출 때 등명기를 켜고 끄는 일 말고도 태양열발전시설 등을 관리하고 등대 주위에 떠있는 부표들의 점등 상태도 확인해야 하며 하루 5차례씩 기상관측을 해서 기상대 등에 통보해야 한다.
김치찌개가 장기인 허 등대장을 포함한 팔미도 등대원 3명은 모두 요리사다.
오랜 세월 사회와 격리된 채 지내면서 식생활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다 보니 어느새 등대원 개개인이 몇 가지 요리는 ‘뚝딱’ 조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등대지기로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추억을 꼽아 달라는 요구에 허 등대장은 오랜 지병처럼 괴롭혀온 고독감 외에 땔감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해 냉방에서 겨울밤을 지새웠던 초년시절을 떠올린다. 그는 정년을 3년 앞두고 있다.
“선박만 안전하다면 설에 집에 못가는 정도가 문제이겠습니까.”
<월미도〓박정규기자>jangkung@donga.com